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북한매체들이 24일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 중앙군사위 인사도 단행됐다. 승진 인사 대상인 최부일, 리병철, 김수길, 박정천, 김정관(왼쪽부터)이 문서에 서명하는 김정은 위원장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단행한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리병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군수공업부장과 박정천 군 총참모장이다.
리병철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고, 박정천 군 총참모장은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했다.
북한 군사 분야의 모든 사업을 지도하는 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의 2인자 자리에 과학기술자에 가까운 리병철 당 군수공업부장을 선출하고, 현직 군수뇌부에서 유일하게 박정천 총참모장을 차수로 승진시켰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됐다. 이 두 사람은 이미 김정은 위원장과 파격적인 일화가 있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맞담배를 허용한 리병철김 위원장은 지난 2016년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동해상 수중에서 성공적으로 시험발사된 뒤 "성공 중의 성공, 승리 중의 승리"라고 대만족을 표시하면서, 미사일 개발을 주도한 공군사령관 출신 리병철 당시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등에게 맞담배를 허용했다.
최고지도자인 수령 앞에서 일반 당 간부에게 맞담배를 허용하고 이 장면을 공개한 것은 북한 역사에서 이 때가 처음이었다. 김 위원장의 반전 용인술로 해석됐다.
리병철은 이후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군수공업부장에 올랐고, 지난 2012년 4월 최룡해 이후 처음으로 이번 인사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당시 최룡해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만이 아니라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겸직해 명실공히 북한 권력 2인자로 평가됐다.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010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서 처음으로 맡은 공식 직책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매우 크다. 바로 이런 자리에 리병철 군수공업부장이 선출된 것이다.
리병철노동당 부위원장(왼쪽)과 박정천 군 총참모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집권1년차 장재도·무도 방문한 김정은, 목선을 함께 탄 박정천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 승계 후 1년 차인 지난 2012년 8월 27마력의 소형 목선을 타고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서해 최남단 장재도·무도 방어대를 방문한 바 있다.
레이더망에도 포착되지 않는 낡고 작은 목선에 김 위원장과 함께 탄 간부 6명 중 한 명이 바로 박정천 당시 포병사령관이다. 김 위원장이 그 다음해 3월 장재도·무도·월내도 방어대를 연달아 방문할 때도 박정천이 배에 동승했다.
박정천은 지난해 9월 군단장이나 야전군 출신이 주로 맡는 총참모장에 이례적으로 임명된 뒤 이번에 현직 군수뇌부에서는 유일하게 차수로까지 승진했다.
리병철과 박정천의 발탁은 북한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여기는 핵전쟁 억지력, 즉 핵·미사일의 전략적 무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리병철은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을 책임지고 있고, 박정천은 초대형방사포·전술유도무기·순항미사일 등 신종 전술무기의 시험발사와 실전배치를 맡고 있는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은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인민군 포병의 화력타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중대한 조치들이 취해졌다"고 했다.
여기서 '전략 무력을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은 북한이 개발한 핵·미사일 및 신종무기를 전략적으로 관리·운용하는 상시적 대응시스템의 구축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병철과 박정천의 발탁은 결국 전략무력의 상시대응시스템 구축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 이들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북한의 핵미사일의 전략무력 강화방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인사라는 얘기이다.
리병철과 박정천의 약진 속에 다소 빛이 바랜 인사가 김수길 총정치국장이다.
북한에서 총정치국장은 통상적으로 김정은 총사령관을 제외한 군부내 2인자로 평가된다. 총참모장이 이른바 '군령권'을 행사하지만, 당을 대표하는 총정치국장이 여기에 정치적으로 관여하며 통제할 수 있다. 총참모부장보다 총정치국장을 더 높게 치는 이유이다.
2012년 최룡해의 예처럼 통상적으로 총정치국장이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맡는 최고기구, 당중앙군사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박정천 총참모장이 차수로 승진하며 대장인 김수길 총정치국장보다 한 계급 높아졌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도 총정치국장이 아닌 리병철 당 군수공업부장이 맡게 됐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북한매체들이 24일 보도했다. 사진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에 총정치국장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매체들은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인민군대를 비롯한 전반적 공화국 무력의 군사 정치활동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편향들에 대하여 총화 분석하고 그를 극복하고 결정적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이 토의됐다"고 전했다.
여기서 언급된 '편향'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속에 인민무력성과 호위사령부, 국가보위성과 인민보안성 등 북한의 주요 무력기관에서 발생하는 각종 기강 해이와 일탈, 부정부패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를 "총화분석"했다는 것은 특정 사안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필요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만이 아니라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들이 함께 참석했다는 것도 의미를 새겨볼 만하다. 이들이 과거에 인민군대 등 무력기관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정부패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소집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2월 3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당중앙위원회 및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 위원회 연합회의에서는 "당 안에 남아 있는 특권과 특세, 세도와 관료주의가 집중적으로 비판되었으며 이를 철저히 극복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이 제시됐다"고 했다.
여기서 "특세, 특권, 세도, 관료주의"는 4년 뒤인 지난 2월 당내 핵심 실세인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을 김일성종합군사학교에서 발생한 부정부패로 해임할 때 북한 매체에서 똑같이 거론한 혐의이기도 하다.
편향, 특세, 특권, 세도, 관료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무력기관 내 부정부패는 사실 인민군 총정치국 등 당 조직의 책임 영역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인민군대 안의 각급 당 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을 튼튼히 꾸리고 그 기능과 역할을 높여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유일적 영도를 철저히 실현하며 군사, 정치, 후방, 보위사업을 비롯한 모든 사업을 철두철미 당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조직 진행해나가기 위한 당적지도를 강화할 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강조는 평소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 이를 책임진 인민군 총정치국과 총정치국장의 영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질책하는 함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수익사업을 하는 군도 코로나 국면에서 자체 수입과 운영 과정에 여러 곤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부정부패 등 군의 정치생활 측면에서 문제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확대회의는 대외 메시지보다 이런 내부적인 군에 대한 관리 통제, 새로운 군사 편제의 실질적인 필요성 차원에서 개최된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북한 인민국 총정치국장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관측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박정천 총참모장이 김수길 총정치국장보다 한 계급 높은 차수로 승진했지만, 총정치국이 제도적으로 군에 대한 당적 통제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 실제적인 권한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김수길 총정치국장도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참석했으며, 김 위원장이 회의를 마친 뒤 7개의 명령서에 서명을 할 때 최부일, 리병철, 박정천, 김정관 등과 함께 단상에 오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