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5월 16일에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 (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국가채무비율이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뭡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이같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을 40%로 본다"는 홍 부총리의 보고에 문 대통령은 "미국은 107%, 일본은 220%, OECD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40'을 넘어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청와대와 '40'에 맞춰 재정건전성 유지하자는 기재부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로부터 1년 뒤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더이상 '40'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1년 새 재정 확대와 1,2차 추경을 통해 국가채무율이 이미 4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국가채무율은 2차 추경을 포함해 41% 수준이며, 3차 추경이 반영될 경우 45~46%로 빠르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기간 기재부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마의 '40%'가 깨지고 몇년 안에 50%를 훌쩍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관측(블룸버그 인텔리전스)까지 나온 상황에서 최근 청와대는 '국가채무율'의 본질을 꿰뚫는데 집중하고 있다.
정책이나 홍보 분야 결정에 몸 담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제히 '40'의 근거를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보수언론이나 경제계 일각에서는 40%대 유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재정건전성 유지를 주장하지만 근본적으로 올라가 보면 그 연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관계자는 "어느순간 국가채무율이 40%를 넘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여겨졌지만 왜 '40'인지를 누구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며 "해외에 어느 사례를 봐도 40으로 설정한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수치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40'이 아니라 '60'이라는 얘기도 청와대와 여권에서 심심치않게 나온다.
지난 1992년 2월 네덜란드에서 유럽 정상들끼리 체결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60%의 뿌리로 지목된다. 이 조약에서 회원국 준수 조건으로 국가채무율 60%를 넘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겼고, 2000년대 유럽연합 재정 준칙에도 적용됐다.
하지만 유럽연합 안에서도 준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이 재정 지출을 큰 폭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수치는 거의 퇴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들과 경제계에서 여전히 국가채무율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청와대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반박 논리를 정치권과 일반에 알리기 위해 노력을 꾀하고 있다.
△'40%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60%라는 기준선이 유럽에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퇴색됐다' △'오히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100~200%대로 폭이 넓다' △'국가채무 자체를 신경쓰기보다 GDP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된다.
당장 3차 추경과 내년도 예산을 심사하는 21대 국회의원들 뿐 아니라 정부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에게도 기회가 닿는데로 이같은 '40%' 도그마를 깨기 위한 논리를 펼쳐 재정의 여력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오랜기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던 국가채무 비율 40%대가 갖는 상징성을 깨고 재정건전성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교한 접근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국가가 푼 돈이 일자리나 투자의 선순환으로 이어져 GDP를 끌어올리고 효율성(재정승수)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최우선 책무이다. 전세계 어느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시급하다.
당분간 '증세' 논의 없이 지출구조조정 만으로 재정을 충당하기로 한 가운데 어디서 어떻게 불필요한 예산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남아 있다.
국가채무 40%의 상징성 깨기는 '역사' 공부를 넘어서 '비전'과 '정책'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지출은 불가피하지만 효과적으로 GDP를 높이고 경제성장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돼야 한다"며 "국가채무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게 조절하고 민간 투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