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5일 저녁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 당직자들이 헌법수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1대 국회가 개원한 가운데 미래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9명이 연루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의 정식 재판 개시가 또 한 차례 미뤄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이환승 부장판사)는 1일 오전 국회법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 나경원·민경욱 전 의원 등 전·현직 의원 24명과 보좌관 3명 등 총 27명에 대한 3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황 전 대표 등은 지난해 4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포함한 '사법 개혁'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등의 내용이 담긴 '선거 개혁' 법안을 여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충돌 사건에 연루돼 올해 초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당시 지도부와 의원 등 24명을 불구속 혹은 약식 기소했으며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피고인은 모두 9명이다.
'자유한국당 불법행위처벌을 위한 고발추진단' 단장을 맡은 이춘석(가운데) 의원이 지난해 4월 26일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으려 물리력을 행사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등 20명을 국회법 및 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피고인 신분인 황 전 대표와 나 전 의원 등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위법적 행위에 대한 정당한 저항권 내지는 입법적인 활동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재차 폈다.
△국회 자율권 △사보임 행위의 불법성 △공수처 법안 등 법안 제출의 국회법 위반 △간사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개회된 정개특위·사개특위 등 4가지가 패스트트랙 진행 과정에서의 위법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에 저항한 피고인 측의 행위는 무죄라는 입장이다.
향후 재판 진행과 관련해서는 검찰 측이 제출한 47명의 진술조서 등에 대해 변호인 측이 동의하지 않은 증거가 3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증언이 재판에서 바로 증거로 쓰이는 데 부동의한 것으로, 30명 넘게 재판에 직접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
변호인 측은 "영상에서 집단으로 (몰려)있었다는 이유로 증거로 제시됐을 뿐 폭력, 협박적인 게 없는 경우도 있다"며 "상황별로 필요하다면 증인을 불러 실체적 진실에 대해 물어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 측은 "소리를 지르거나 사람에 위협을 행사한 것은 폭행이라고 사실을 기재한 것인데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맞받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 4월 25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바른미래당 간사인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상임위·특위 의원 교체)을 허가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차기 간사인 채이배 의원실을 점거하자 채 의원이 창문을 통해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검찰은 아울러 '채이배 의원 감금' 사건과 관련한 증인들을 먼저 부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검찰은 "가장 간명하고 정확한 채 의원 관련 건을 먼저 하고, 이후 동의나 부동의 상황을 보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충돌 당일 시간 흐름에 따라 △채이배 의원 감금 △의안 접수 방해 △정개특위·사개특위 충돌 순서대로 재판을 진행하자는 취지다.
이를 두고 변호인 측은 "채 의원실 감금 건의 경우, 일부 의원만 관련돼 있지만 황 전 대표 등 다른 피고인들 일부도 관여된 것처럼 공소사실이 기재된 부분이 있다"며 "범죄단체 비슷하게 계획 실행을 지시한 것처럼 기재돼 있어 다른 피고인들의 형사책임과 관련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채 의원 사건과 관련해 황교안 전 대표는 피고인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며 "관련 범죄사실에서 공모 부분은 따로 기재하고 있다"고 변호인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결국 재판부는 재판 진행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한 번 더 구한 뒤 정식 공판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6일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열 예정이다. 앞서 재판부는 총선 일정과 증거 영상 분석 등을 이유로 재판을 미뤄달라는 통합당 측 변호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 차례 재판 절차를 미뤘다.
황 전 대표 등 피고인들은 이날 열린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사건 심리에 앞서 공소사실에 대한 검찰과 피고인 측 입장 등을 정리하고 재판 일정을 결정하는 절차로, 피고인들이 반드시 출석해야 할 의무는 없다.
국회법상 '국회 회의 방해죄'로 기소된 당선인들은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5년 동안 피선거권을 잃는다. 징역형 이상이 확정될 경우에는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
한편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보좌관 10명에 대한 4차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6일 열린다. 이들은 국회법 위반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공동폭행 혐의를 받고 있으며 21대 당선인 3명은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