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여성연합회 전 총무이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초기 활동에 참여한 윤영애(77)씨가 지난달 29일 CBS노컷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하얀 기자)
"이용수 할머니가 이야기할 때, 이건 나한테 책임이 있구나. 여성운동 차원에서 운동을 시작했었는데, 하나씩 다시 정립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인 할머니가 제안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참고 견디고…그리고 성의껏 해야 해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원로 윤영애(77)씨는 최근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논란에 "오히려 아주 냉정하게 (생각하게 됐고), 마음의 동요가 없어졌다"고 털어놨다.
기생관광 문제를 다룬 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교여연) 총무였던 윤씨는 여성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정대협 초기 활동에 몸담았다.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씨의 신고를 처음으로 접수했고 이후 김씨의 기자회견을 도왔다.
불거진 의혹에 대한 문제의식과 '위안부' 운동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그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간 이어온 운동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은 메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정대협 원로 성명문에 이름 올리지 않았다"지난달 20일 정대협 원로 12명은 정의연이 공개한 '초기 정대협 선배들의 입장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피해자 인권과 30년 정대협 활동을 생각해주기 바란다"며 "정대협의 긴 활동 중 회계 부정을 접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정의연에서도 회계 부정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씨도 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름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위안부' 활동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였다.
윤씨는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 있어 빠졌다. 자신들은 부정한 게 없다는 식으로 썼는데, 내가 윤미향 의원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실수가 잦으면 실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걸 잘못했다고 얘기하고 조사위원에 맡기고 책임질 건 지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런 말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부정의혹 등을 받고 있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지난 5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후원금 횡령 등 회계 부정 의혹을 두고는 조직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돈 문제는 속일 수 없다"며 "회계(담당자)가 개인 통장을 들여다보지 않았는지, 이사들은 뭐 했는지, 왜 윤미향 의원이 통장 관리부터 해외 활동까지 전부 다 하도록 내버려 뒀나"라고 꼬집었다.
윤씨는 "한교여연 활동 당시 예산 3원이 없어 온 직원이 밤을 꼴딱 새운 적이 있다"며 "한두 푼이 아니지 않나. 회계장부에 다 기재돼 있어야 한다. 일일이 하면 시간이 많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정 작용을 위해 조직 개편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씨는 "자꾸 사람이 바뀌면 맥이 끊어지는 것 같지만 클리어(깨끗)한 것이고, 혼자서 직책을 바꿔가며 (활동을) 오래 하면 노하우가 생기지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정의연' 홈페이지 캡처)
◇운동이 보편성 얻어가는 과정에서 쌓인 '공'과 '과'30년간 이어진 정대협·정의연의 활동으로 '위안부' 운동은 국내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다. 단체의 관심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옮겨갔다.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로 칭하며 활동했다.
윤씨는 "국가가 처음에는 모른 척했지만, (정대협·정의연이) UN 등 해외에 나가 인정도 받고 운동에 힘이 생기면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이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이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정의연이 활동 반경을 넓혀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린 것은 성과로 꼽히지만, 피해자 개개인을 향한 세심한 배려는 필연적으로 약화됐을 것이라고 윤씨는 말했다.
윤씨는 "이전에 후배들에게도 '피해자들이 보는 눈과 우리(활동가)가 보는 눈은 다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말했다"며 "(단체는) 운동 확산이 할머니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운동 확산으로 바빠지다 보니 (할머니들을) 등한시하게 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어떻게 운동의 주체로 세울지에 대한 고민은 초기 정대협 활동 당시에도 있었다. 윤씨는 "할머니들로 구성된 하나의 모임을 꾸리고 그 대표가 (정대협) 실행위원으로 와서 같이 (활동)하면 어떨지, 안을 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해당 안은 실행되지 못했다. 윤씨는 "당시 할머니들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동안 사회의 냉대에 숨어온 만큼, 이 같은 대안은 오히려 할머니들을 힘들게 한다는 게 실행위원들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04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대사관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정의연, 운동에 보다 집중해야…정부·시민단체 역할 정립 필요"
윤씨는 그럼에도 '위안부'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협이 30년 전 일본 정부에 요구한 요구사항들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아서다. 정의연의 7대 요구사항은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 교과서 기록 △추모비·사료관 건립 등이다.
운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재된 단체와 정부의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정부는 피해자들의 복지를 책임지고, 시민단체는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생활비 지원, 요양원 건립 등 복지는 정부에 맡기고 정의연은 운동, 교육 등에 집중하자는 게 요지다.
일각에서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17명 남은 시점에서 운동을 어떻게 끌고 갈지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이에 윤씨는 "할머니들이 증인으로 나서서 여성운동이 힘을 받은 건 맞지만, 할머니들 (별세)로 운동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한 단체의 국내외 활동은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의연 내부 쇄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뼈를 깎는 성찰 속에서 재정비가 될 수 있다"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윤 의원은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고 단체는 벌여놓은 사업들을 추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체의 철저한 자기 분석·평가를 요구했다. 윤씨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내부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정리해야 한다. 윤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단체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