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배준환(37)(사진=고상현 기자)
미성년자 성 착취물 1200여 개를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배준환(37‧경남). 배씨는 자신보다 8살 어린 성 착취범에게 '사부'라고 부르며 범행 수법을 배웠다. 이들의 범행은 'n번방' 사건으로 전국이 들썩일 때도 보란 듯이 이뤄졌다.
◇고개 떨군 배준환 연신 "죄송하다"
17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배준환을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배씨는 이날 오후 1시쯤 검찰로 가는 호송차에 타는 과정에서 얼굴을 공개했다.
포승줄로 묶인 채 검은색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배씨는 '혐의를 인정하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에게 하고픈 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 경찰은 경찰관 3명, 변호사 등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한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피해 정도, 증거 관계, 국민의 알 권리, 범죄 예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준환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n번방‧박사방 사건' 피의자의 신상만 공개됐다. 이들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고상현 기자)
◇8살 어린 '사부'로부터 범행 전수배준환은 2005년부터 불특정 다수의 성인 여성을 상대로 성관계를 하고, 이 과정을 몰래 촬영했다. 자신의 나체 사진뿐만 아니라 '몰카' 영상을 성인사이트에 올렸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 착취물을 본격적으로 제작한 것은 2018년 7월부터다. 배씨가 스승을 높이는 말인 '사부'라고 부르는 A(29‧경기)씨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다. 배씨의 성 착취 게시물을 본 A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배씨에게 접근했다.
배씨에 앞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 착취물을 제작해온 A씨는 배씨에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미성년자를 상대로 쉽게 성 착취물을 제작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배씨에게 미성년자 유인 방법과 멘트 등을 전수했다.
◇'n번방' 이후 버젓이 범행…'우린 안 잡힌다'A씨로부터 범행 수법을 배운 배씨는 올해 6월까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미성년자 44명을 유인해 성 착취물 1293개를 제작하고, 이 중 88개를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연령대는 적게는 만 11세부터 많게는 만 16세에 이른다.
배씨는 피해자들에게 노출 정도에 따라 1000원~2만 원 상당의 카카오톡 기프티콘, 문화상품권 등을 선물해주며 성 착취물을 제작했다. 심지어 만 14세 피해자 2명에게는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하고 이 과정을 몰래 촬영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닉네임인 '영강(영어강사 줄임말)'을 적은 종이를 들고 나체 사진 또는 영상물을 찍어서 보내도록 했다. 배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직 영어강사여서 닉네임을 '영강'이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배준환과 A씨의 범행은 올해 초 'n번방' 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을 때도 이어졌다. 범행을 위해 수시로 선불폰을 바꾸던 이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는 안 잡힌다'는 내용을 서로 주고받았다.
◇열광하는 소비자 있기에 '배준환' 존재
배준환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성욕 해소 목적도 있었지만, 성인사이트 게시물에 사람들이 떠받드는 내용의 댓글을 달자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가 금전적인 목적보다는 과시욕으로 범행했다고 보고 있다.
배준환의 범행은 성 착취물에 열광하는 '소비자'가 있기에 오랫동안 지속됐던 것이다.
제주여성인권연대 송영심 대표는 "성인사이트라는 공간에서 성 착취 게시물에 대해 남성들이 묵인하고, 오히려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이번 사건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경찰은 앞서 지난달 재판에 넘겨진 배씨의 '사부' A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배씨의 범행을 인지했다. 이후 수사를 통해 혐의를 특정 짓고, 지난 7일 경북 대구시에서 유통 일로 출장 온 배씨를 검거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A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대 피해자 4명을 상대로 성 착취물 수백 개를 제작하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지난달 29일 첫 재판에서 "그 당시 범죄인 줄 몰랐다"고 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