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 선출 방식이 약식선거로 결정됨에 따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차기 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당원까지 참여하는 정식선거를 치를 경우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유리하지만 약식선거 방식에선 계파간 밀실정치가 작동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약식선거로 선출…한일관계 전향적인 이시바 전 간사장은 불리 일본 자민당은 지난 1일 총무회를 열어 당원 투표 없이 참·중의원 양원 총회로 새 총재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우리 입장에선 이시바 전 간사장이 총리가 되는 게 한일관계 개선 차원에서 그나마 가장 바람직하다.
그는 방위상을 역임했던 만큼 자위대 역할 확대를 적극 찬성하는 등 우파 성향이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의 분사를 주장할 만큼 유연한 역사의식도 갖고있다. 하지만 자민당의 이번 결정으로 그의 집권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다.
이에 따라 스가 관방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이 좀 더 경합하겠지만 대세는 이미 스가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흙수저' 출신의 스가 장관은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아 뒷배는 약하지만 현 상황에선 오히려 이게 장점이 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자민당 총재 선거 방법이 당원투표 없이 양원 총회를 통해 약식으로 선출한다고 보도했다. (사진=NHK 방송화면 캡처)
일본 언론 보도 등을 보면,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 최대 파벌 호소다파(98명)와 아소파(54명), 니카이파(47명)의 지지를 받고 있고 다케시다파(54명)와 이시하라파(11명)도 지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기시다 정조회장은 자신이 이끄는 기시파 파(47명) 외에는 별다른 지지 세력을 얻지 못한 상태다. 심지어 이시바 전 간사장이 속한 이시바파 소속 의원은 19명에 불과하다.
◇단기필마 스가 장관 급부상…유력 파벌의 '얼굴마담' 가능성만약 스가 장관이 집권한다면 한일관계는 지금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많다.
그는 아베 총리의 2차 재임기간인 7년 8개월 동안이나 관방장관을 역임하며 '한국 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해왔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강성 극우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측근들의 말만 들었던 아베와 달리 관료들의 의견을 균형적으로 청취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베에게 인사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문제는 스가 장관이 독자적 세력이 없다시피 한 단기필마라는 점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처럼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후원 파벌의 얼굴마담 역할에 그칠 수 있다.
◇극우 아소 다로와 밀약설…강경파 고노 관방장관 입각 가능성이미 일본 내에선 스가 장관이 집권할 경우 아소파와의 밀약 속에 고노 다로 방위상을 관방장관에 앉힐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아베의 맹우(盟友)로 불리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고노 관방장관 입각 등을 조건으로 스가와 제휴한다는 것이다.
취재진 만나는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 (사진=연합뉴스)
고노 방위상은 1993년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최초로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이지만 부친과 달리 한국에 강경 태도를 취해왔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스가와 아소는 원래 대립관계였는데 최근 스가가 제안한 이권 문제로 급속도로 접근했다"며 그 이권은 홍콩을 대신할 아시아의 금융센터를 아소의 선거구인 후쿠오카에 세우는 것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를 소개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권 때문에 연대한 아소, 호소다파가 스가에게 요구한 조건은 아베 정권 계승이고 스가도 승낙한 모양"이라며 "결국 '포스트 아베'도 강경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한일관계는 힘든 가을을 예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아베에 끌려다닐 가능성"…아베의 그림자 지속될 듯
아베 총리가 사퇴하긴 해도 여전히 중의원 신분을 유지하며 막후 역할을 수행할 관측도 한일관계에 드리운 아베의 어두운 그림자를 예고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 인터뷰에서 "(아베 정권이) 지난 6번 동안 중차대한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아베의 은덕을 안 받은 사람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는 스가가 아베에 끌려 다닐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스가 장관도 '아베 1강' 체제가 종식된 이상 유력 파벌들의 고용 사장 신세에 만족하지 않고 개인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일본이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등 내부 사정이 화급하고 정치적 변동성도 커진 만큼 한일관계는 당분간 뚜렷한 반전 계기를 얻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답변에서 아베 사퇴에 따른 한일관계에 대해 "희망적 전망을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며 여전히 녹록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