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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늘어난 공짜노동…"택배 기사 과로사 막아주세요"

사건/사고

    코로나19로 늘어난 공짜노동…"택배 기사 과로사 막아주세요"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주당 평균 71시간 일하지만, 소득은 최저 임금 못 미쳐
    코로나19로 업무량 30% 늘었지만, 수수료 못 받는 분류작업 늘어
    기사들 건강 상태 심각…우울감 호소도 26%
    추석 물류대란 앞두고…분류인력 투입이 유일 대책
    근본적 처우 개선 위해 법 개정 등 필요도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 8개월간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 가운데, 이들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에 달한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코로나19 이후로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30%가량 증가하는 등 노동환경은 더 열악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과로사 대책위)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장경태·윤미향 의원실은 1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표적 집단 인터뷰(현장 업무 경험자 3명)와 함께 설문조사가 병행됐다. 설문 조사에는 택배 노동자 총 821명이 참여했다. 노동조합 가입자가 67.7%, 비가입자가 32.3%였다.

    ◇택배 노동자, 주간 평균 71시간 일하지만, 소득은 최저임금 안 돼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짧은 월요일과 토요일의 경우에도 평균 노동시간이 통상 10시간 내외에 달했다.

    한 사무처장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르면,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하거나 정신질환이 발생할 경우 인정되는 노동시간이 주당 60시간"이라며 "현재 택배 노동자 모두가 업무상 질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인근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로는 택배 노동자 전반이 업무량이 30% 정도 늘었다고 답했다. 택배 분류 증가율이 35.8%, 배송 증가율이 26.8%다.

    문제는 소위 '까대기'라 불리는 택배 분류 작업의 증가다. 택배 분류 작업은 대개 도급 계약과정에서 대리점 사장의 요구로 노동자가 해당 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있을 뿐, 실제로 수수료가 지급되는 업무가 아니다. 택배 노동자 입장에서는 소위 '공짜 노동'이 늘어나는 셈이다.

    장시간의 노동에도 소득수준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다. 조사 결과 주당 70시간을 일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은 월평균 458만7천 원을 받는다. 여기서 각종 수수료와 차량 관리비, 물품사고비 등 '지출'을 고려하면 234만6천 원 정도가 남는다.

    한 사무처장은 "주 70시간을 일하는 점, 심야 노동을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274만 원은 순소득으로 남아야 한다"며 "주 40시간을 전제로 한 최저임금이 월 157만 원 남짓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업무로 인한 사고로 병원, 한의원, 약국 치료를 받은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45%였다. 또 전체 응답자의 83.6%는 허리 통증을, 85.2%는 하지 통증을 호소했다.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었다는 응답자도 26%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미래를 대비할 연금 등의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건강보험 미가입률은 13%,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40%, 산재보험 미가입률은 60%에 이르렀다. 고용보험은 거의 가입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 30% 늘었는데…추석 앞둔 대책 마련 촉구

    이어진 토론에서 과로사 대책위와 시민단체는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이미 택배 물량 증가가 이뤄진 상황에서, 다가오는 추석 물량 급증까지 생기면 택배 노동자의 업무 과중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인근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강규혁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로사 대책위 진경호 집행위원장은 분류 작업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진 집행위원장은 "분류 작업에 추가인력을 투입하는 것만이 거의 유일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된다"며 "1만 5천 명의 택배 노동자가 근무하는 CJ대한통운의 경우, 5명당 1명의 분류 인력 투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8월 중순쯤에 발표하기로 한 '2차 권고안'을 시급히 발표해서 민간택배사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라며 "'2차 권고안'에는 분류 작업 추가인력 투입과 하차 종료시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분류 인력 투입에 대한 비용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당연히 택배사들이 책임져야 하지만, 이로 인해 추가 인력 투입이 지연된다면 택배 노동자들도 일정 금액 분담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이조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는 근본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이 선임간사는 "택배 노동자는 실질적 노동자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로 규정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국회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범위를 확대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단기·중기 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할 필요도 있다"며 "일명 택배법이라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택배 노동자의 유가족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대책위와 시민단체는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이 이행되면 '분류 종사자'와 '배달 종사자'를 구분해 분류 작업이 택배노동자들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에는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나와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이진철 물류산업과장은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택배 노동자 보호조치 관련해서 1차 권고사항을 발표했다"며 "법이 아니라 권고조치이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은 택배 업체들에 대해서는 택배 서비스 평가 순위에 반영하는 방법으로 제한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족하지만, 업체별로 일정 정도의 변화가 감지됐다"며 "주 5일제를 실시하거나 건강검진을 하는 경우, 일부 영업점에서 배송인원을 증원한 부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택배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이) 열악한 이 시점에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이 다시 발의됐다는 걸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해당 법이 가진 전반적인 취지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법이 잘 통과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일을 하겠다"라고 밝혔다.

    '2차 권고안'에 대해서는 "물류 작업 등에 대해서 여러 업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업계와 많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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