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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벌써 8개월…기약 없는 장기전에 짙어지는 '코로나 블루' (계속) |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 1월 20일 중국에서 유입된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견된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동거는 15일로 240일을 맞았다. 치료제나 백신 등 근본적 해결책은 여전히 부재한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개별 방역주체인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시간에 비례해 커져가고 있다.
앞서 일일 신규 확진자가 불과 2~3명에 그쳤던 지난 5월 초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면서 한때 종식에 대한 섣부른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내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 등이 터졌다. 이후 조금씩 잦아들던 확진세가 지난달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를 주축으로 한 수도권 유행으로 재차 본격화되고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시민들이 겪는 '코로나 블루'(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느끼는 우울감 등)는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 위기" 39.6%→83.7%…"남 탓도 못하겠고 미칠 노릇"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서울 홍대 부근에서 미용업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A씨는 "원래 매장 홀에 2~3명 정도 인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만 나와 있다"며 "보통 밤 8시 30분에 퇴근해, 밥을 먹고 귀가했는데 이제는 밥도 못 먹고 (집에) 가고 있다"고 달라진 일상의 단면을 짚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딱히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보니 (남) 탓을 할 수도 없고 미쳐버릴 것 같다. 중국 잘못이라 하기엔 너무 막연하지 않느냐"며 "홍대는 요즘 밤 8시 30분만 지나도 유령도시 같다"고 갑갑함을 토로했다.
초등학교 1학년 딸과 갓 돌이 지난 아들을 키우는 전업주부 노성은(41)씨는 "지난 4월쯤부터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는데, 아이들의 에너지 발산을 집에서 해소해야 하고 초등학생인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부분 등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저도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확 오더라. 제 생활이 전혀 없고 애들 밥 챙겨주고, 공부 봐주고, 집 치우다 보면 하루가 그냥 가다 보니 스트레스나 힘듦을 잘못된 방향으로 풀게 된 것 같다"며 "아이를 혼낼 때도 보다 너그러울 수 있었는데 더 화를 내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막말로 전혀 합당한 이유는 아니지만, 아동학대가 이렇게 일어나는 건가 싶더라"고 털어놨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정서적 어려움은 비단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연구에서 국민 상당수가 함께 느끼고 있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 연구단'(총괄 유명순 교수)이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1차 조사로 지난달 25~2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일이나 생활에서 자유가 제한됐다'(55%)고 답변했다. 또 '정서적으로 지치고 고갈됨을 느낀다'(39.3%), '실제 우울감을 느낀다'(38.4%)고 응답한 이들도 40%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걷기 등 신체활동 감소(50.9%) △중요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함(16.6%) △사생활이 침해되는 경험을 함(13.6%) △중요한 관계로부터 분리되는 경험을 함(10.6%) 등 응답자의 대다수(91.5%)가 정신건강에 코로나19가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체험했다고 답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였던 지난 5월보다 국민들이 느끼는 국가적 위기감도 고조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사회는 코로나19로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완전한 위기'를 1점, '완전한 기회'를 10점으로 설정하고 국민들의 인식을 살펴본 결과, 83.7%가 현재 한국사회는 '위기'에 더 가깝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유명순 교수팀이 지난 5월 중순 '코로나19 국민인식조사'를 진행했을 당시 '기회'라는 인식(60.4%)이 '위기'(39.6%)보다 우세했던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사회의 좌표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뒤집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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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단절'된 2030…모노톤 일상에 무력감·막막함만 늘어
수도권에 적용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하향 조정된 14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 PC방을 찾은 시민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고위험시설'로 분류돼 영업이 중단됐던 PC방은 '고위험시설'에서 제외돼 오늘부터 영업을 재개했다.(사진=황진환 기자)
사회활동이 가장 왕성한 '2030' 젊은층은 인생에 한 번뿐인 시기에 응당 누려야 할 것들을 잃은 데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한층 더 크다. 대인 교류가 급격히 줄고 여가를 홀로 보내는 '자급자족'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누적되는 부정적 감정들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올해 수도권 소재 한 공대에 입학한 김지훈(20·남)씨는 "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연락해서 같이 밥도 먹고 놀았지만, 요즘은 혼자 영화 보는 것으로 푸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신입생일 뿐 아니라 한 번밖에 없는 스무 살 시절에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연애, 해외여행 등 이것저것 여러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는데 집과 배달 알바를 오가는 생활로만 올해가 끝나간다는 게 너무 아쉽다 못해 억울하고 슬프다"고 단조로운 생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취준생'(취업준비생) 박하나(34·여)씨는 최근 들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더욱 가중됐다. 때로는 달력을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수준이다.
박씨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카페가 코로나로 인해 잠정휴업하게 돼 지난 2월 1년 가까이 일했던 일자리를 한순간에 잃었다"며 "취업하고자 했던 업계마저 어려워져서 당분간 신입채용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생계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고, 지금 상황에서 앞날을 내다보는 게 막막하다"고 고백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심리상담이나 치료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시기엔 모두가 다 힘들다'는 생각, 비용에 대한 부담이 발목을 잡았다. 저녁이면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며 기분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밤마다 엄습하는 답답함이 잠을 방해할 때면 수면제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어느 정도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상태임에도 안정성이 떨어지는 고용형태로 직격타를 맞은 경우도 있다.
공연·이벤트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은 김모(38·여)씨는 특정업체에 적(籍)을 두지 않은 프리랜서다. 국내외 기업, 정부 행사 등 사람이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1만 명까지 모이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생업으로 이어온 만큼 사람의 모임을 금기시하고 해외교류를 위험요소로 보는 코로나 국면은 뼈아픈 충격이 됐다.
김씨는 "올해 계획된 이벤트들이 다 취소되거나 잠정적으로 연기돼 경제적 수입 면에서 큰 변화와 손실이 잇따르고 있다. 실질적으로 올해 총 수입은 작년 월수입에 못 미칠 정도고, 그나마 가능한 일감도 질적으로 앞으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 업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울러 "언어 학습, 운동 등의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거리는 없는 반면 시간은 많아져 그간 접하지 않았던 인터넷 영상 시청, 모바일 게임 등으로 현실과 단절된 생활을 하게 됐다"며 "이로 인해 생활 패턴이 흔들리고 무기력증, 시력 저하 등의 신체적 변화까지 느꼈다"고 설명했다.
◇청년층 고립감, '신체 자해'로까지…우울증 진료도 '급증'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 같은 청년층의 고립감과 우울은 자칫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자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고의적 자해'로 병원을 찾은 건수는 1076건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5.9%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20대(213건)는 지난해 상반기(118건)와 비교해 80.5%가 폭증했고, 30대(161건) 역시 1년 전(86건)보다 87.2%가 뛰어올라 가파른 증가폭을 보였다. 특히 20대는 5년 전인 지난 2015년(42건)에 비해 무려 407%가 껑충 뛴 것으로 파악됐다.
또 하나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우울증의 경우, 올 상반기 총 59만5724명이 병원 진료를 받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압도적 증가율을 보인 연령대는 20대로 9만3455명으로 집계돼 지난해 상반기(7만2829명)보다 28.3% 급증했다. 30대 역시 7만7316명이 병원 문을 두드린 가운데 1년 전(6만7394명)보다 14.7% 올라 적지 않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자가격리자와 일반인 상담을 담당하는 서울 동대문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김성남 부센터장은 "젊은 분들이 워낙 액티브(active)하고 대인관계를 활발히 해야 하는 연령대인데 거리두기로 사람들을 못 만나고 대인관계도 잘 안 되다보니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전례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해결방법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들의 경우에도 온라인 수업을 하긴 하지만, 교수님이나 동료,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이 없다 보니 학교라는 의미가 많이 상실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도 한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젊은 상담자 중) 우울증, 수면장애가 있는 분들도 있고, 두통·소화불량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에 연결해 드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