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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열전]올해도 반복된 특전사의 씁쓸한 격파 시범



국방/외교

    [안보열전]올해도 반복된 특전사의 씁쓸한 격파 시범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9월 22일 국군의 날 기념식 준비사열에서 촬영된 특전사 대원의 모습. (사진=국방부 제공)

     

    오늘은 10월 1일, 72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올해는 추석 연휴와 겹친다는 점 등을 감안해 지난 9월 25일 경기도 이천의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특전사 출신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특전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수전 부대"라며 특전사의 뿌리는 한국광복군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괜찮을까요. 문 대통령의 기념 연설이 아니라, 우리 특전사의 현실 말입니다. 취재 결과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실전적인 특수전 부대'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실제론 그러지 못하고 있는 우리 특전사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격파 시범, 실전성보다 보여주기식…장비 문제로 레펠 하강 시범 연습 중 추락사고까지

    지난 9월 22일 국군의 날 기념식 준비사열에서 특전사 대원이 대리석 격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군대 시범' 하면 마치 차력 시범과도 비슷한 '격파'를 흔히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대리석, 벽돌, 심지어 맥주병 격파까지 등장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곤 했죠.

    문제는 이런 시범을 준비하면서 다치는 대원들이 꼭 부대마다 한 명 이상은 생긴다는 겁니다. 물론 군에서 하는 대부분의 훈련은 위험하며 뭔가를 연습하다 다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연습하던 것이 실전에서 별 쓸모 없는 격파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죠.

    격파 시범은 올해 행사에서도 여전했습니다. 주로 대리석을 격파하는 시범이었는데 그전의 '맥주병 격파'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여전히 부상 위험은 있다고 합니다. 맥주병 격파가 없어지면서 유리에 다칠 걱정은 그나마 사라졌다나요.

    익명을 요구한 군의 한 관계자는 "2018년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던 국군의 날 행사를 마치 공연처럼 진행했다가, 정치권 일각에서 지금 장난치냐면서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 영상을 직접 확인해 보니 대리석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송판 격파 정도만 나오더군요.

    이 관계자는 "올해도 어디에선가는 비판이 나올 텐데 결국 어느 쪽에서 욕을 먹을지 선택해야 한다"며 쓴웃음을 짓기만 했습니다. 실전에 필요한지 여부가 최우선이 아니라 얼마나 '겉보기에 멋있어 보이는지, 정치권에 잘 보이는지'가 먼저라며 실제 대원들도 냉소를 짓곤 합니다.

    지난 9월 22일 국군의 날 기념식 준비사열에서 특전사 대원이 헬기 레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부상자는 격파 때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국군의 날 행사 시범을 위한 헬리콥터 레펠 하강 연습 중 특전사 예하 한 여단 소속 대원 한 명이 추락하면서 허리와 다리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레펠은 높은 곳에서 줄에 의지해 내려오는 만큼 위험한 훈련이고, 실수 등으로 다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합니다. 진짜 문제는 이 사고가 발생한 원인입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 사고는 특전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노후화된 하강 장비를 얼마 전 새 것으로 교체했는데, 새로 들어온 이 장비가 하강 중 문제를 일으키면서 발생했다는 겁니다. 그 뒤 이 장비는 또다른 하강 장비로 다시 바뀌었다고 합니다.

    군인이 훈련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습니다. 또 차라리 시범을 실전에서 필요할 수도 있는 격투나 적 제압 등으로만 구성했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실전에는 전혀 쓸모가 없으면서 부상만 초래하는 격파 시범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안전장비가 오히려 사고를 초래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요.

    군 당국은 취재진의 질의에 대해 "장비 결함은 없으며, 군사경찰이 정확한 사고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는 짧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국군의 날 등장한 정예 대테러부대…입고 나온 바지가 중국제 짝퉁?

    지난 9월 22일 국군의 날 기념식 준비사열에서 촬영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 대원들의 모습. 맨 오른쪽의 두 명은 '크립텍' 사의 '티폰' 위장무늬, 그 왼쪽의 두 명은 같은 회사의 '맨드레이크' 위장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다. '티폰' 위장무늬를 입은 대원들은 검정색 바지를 입었다. (사진=국방부 제공)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군의 최정예 대테러부대, 707특수임무단에서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서 707특수임무단은 검정색 계열의 '대테러복'과 갈색 계열의 '특수작전복'이라는, 우리 군에서 일반적으론 찾아볼 수 없는 전투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전자의 정체는 미국 '크립텍' 사의 '티폰' 위장무늬, 후자는 같은 회사의 '맨드레이크' 위장무늬입니다.

    특수부대가 일반 보병부대와 다른 위장무늬 전투복을 착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707특수임무단은 이를 몇 년 전부터 사용해 왔고 언론에도 모습이 공개됐었죠.

    진짜 문제는 어떤 옷을 입느냐입니다. '크립텍' 위장무늬는 특수부대들 사이에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제품은 아니기 때문에, 회사들이 만드는 제품군이 좁다고 합니다. 특히 현대전에서 잘 쓰이는, 신축성이 있고 무릎보호대가 달린 바지 '컴뱃 팬츠'는 이 무늬로 된 것이 참 드물다고 하네요.

    때문에 과거 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707 대원들이 크립텍 위장무늬 셔츠를 입으면서 부대에 보급되는 검정색이나 특전픽셀(특전사 제식) 전투복 등의 다른 바지를 입기도 합니다. 이것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작전 수행보다 '셔츠와 바지 깔맞춤'이 우선시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던 것이 이번 국군의 날 행사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부대원들이 개인적으로 사 입었던 중국산 서바이벌 게임용 바지를, 이날 행사에서 필요한 이른바 '깔맞춤'을 위해 행사에서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온 겁니다.

    대원들이 개인적으로 바지를 사 입는 것도, 성능이 어느 정도 검증되거나 이를 보증할 수 있는 제조사가 만들기만 했다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이 바지가 스포츠용으로나 쓸 수 있는, 내구성과 내화성(불에 버티는 능력)이 떨어지는 바지라는 겁니다.

    군 당국은 취재진의 질의에 "셔츠는 정상적으로 부대에 보급된 물건이고, 바지는 개인적으로 구매한 물건이 맞다"며 "실제 전투용이 아니라 (국군의 날) 퍼포먼스를 위해 입은 것이며, 작전할 때는 입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꼭 행사를 위해 이런 저품질 바지까지 동원해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작전 수행보다 '깔맞춤'이 우선시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이 옷이 '다양한 작전환경에서 위장능력을 극대화한 특수복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미군 특수부대의 작전 중에 찍힌 사진에는 상하의 위장무늬가 전혀 다른 경우도 다수 발견됩니다.

    정말 '위장능력을 극대화한 특수복장'이라면 행사에서도 '깔맞춤'보다 실용성이 더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 모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석해균 선장 살린 '사제' 장비…성능 떨어져도 보급품만 써라?

    지난 9월 25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대원들을 격려하는 문재인 대통령. 특수전전단 대원들이 입은 위장무늬는 미국 '크라이' 사가 개발한 '멀티캠'으로, 미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유튜브에선 '가짜 사나이'라는 콘텐츠의 인기가 높습니다. 인터넷 방송인들이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훈련을 체험한다는 내용인데요, 특수전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는 모양새입니다.

    해군 특수전전단은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을 치른 뒤, 미국 '크라이' 사에서 만들며 미군 특수부대도 애용하는 '멀티캠' 전투복을 그대로 들여오는 등 보급 장비가 꽤 좋아졌습니다. 옷 한 벌에 수십만원씩 들더라도 실전에서 좋은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석해균 선장을 살렸던 응급처치키트는 군 보급품이 아니라 대원이 개인적으로 구입해 작전에 가지고 들어갔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대원들은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는 민간 회사들의 장비들을 개인적으로 사다 쓰기도 합니다.

    현재 군의 조달 체계는 좋은 장비를 보급하고 싶어도 현행법 등의 한계로 시간이 오래 걸리며, 또 보급 당시에는 최신 장비일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또 업체들이 새로운 물건들을 내놓으니까요.

    미국 'SOG'사의 '씰 스트라이크' 단검(나이프). 특전사에는 얼마 전 이와 비슷한 특수전용 칼이 1만개 정도 납품됐다. (사진=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헌데 특전사에선 이야기가 좀 다른 모양입니다. 육군은 몇 달 전 미국 SOG사의 칼 하나를 '많이 참고해' 만든 칼 약 1만자루를 특전사에 보급했습니다.

    이 칼은 '총검술'용 대검 대신 극한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단검이 필요하다는 일선의 요구로 들어온 물건입니다. 문제는 이 제품이 기성품과 상당 부분 비슷하며, 중국에서 불법으로 복제돼 만들어진 칼이 아니냐는 의혹도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는 겁니다.

    취재진은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일선 부대에 보급된 이 칼의 모습을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를 기사에서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손잡이와 칼집의 로고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비슷합니다.

    실제 평가에 대해선 여러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소식통은 "몇 년 전 SOG사의 정품도 2천개쯤 납품됐었는데, 둘 모두를 다뤄봤더니 품질 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며 "사업 자체가 처음부터 허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죠.

    또다른 소식통은 "대체로 쓸 만했고, 일반적인 훈련 등의 상황에서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기준을 넘는 극한의 실전 상황에서 이 칼이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의문이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이 칼이 버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육군은 "칼의 재질에 대한 성분과 경도 검사를 통해 정상적인 보급 절차를 거쳤다"며 "지적재산권 위반 문제는 각 회사들끼리 해결할 일이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러 언론에 의해 문제가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 법적으로나 품질 측면에서나 문제가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응급처치키트 같은 것들은 특전사에선 먼 얘기인가 봅니다. 몇 달 전에는 각 부대별로 실무 선에서 조금씩은 다르지만, 탄창집(파우치)과 전투화 등을 사서 쓰는 일까지 기준을 엄격하게 해서 금지했다고 합니다.

    한 소식통은 "보급된 탄창집은 구형 M1911(45구경) 권총에 맞춰진 것으로, K5 권총을 쓰는 경우엔 탄창이 들어가긴 하지만 빨리 뽑을 수 없는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또다른 소식통은 "산과 도시 지역에서 필요한 신발이 모두 다른데 6인치(약 15cm) 이상의 목이 긴 신발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이 개인 돈을 들여서 하겠다는 전투력 향상조차 막고 있는 셈입니다. 2013년 특전사령관 임명 뒤 이를 대폭 허용했었던 전인범 전 사령관(예비역 육군 중장)은 "흔히 통용되는 미군의 '밀스펙(Mil-Spec, 군사작전에 쓸 수 있다는 내구성 충족 기준)' 인증을 받은 장비들이라면 우리 군이라고 그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며 대안을 제시하고, "핵심은 좋은 장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데…실전 치러야 하는 부대 숨막히게 하는 간섭

    지난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남영신 신임 육군참모총장에게 보직신고를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웃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육해공군의 정예 특수부대에서 근무했던 전직 대원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답은 '소방서'라고 합니다. 나름대로의 꿈을 품고 입대했던 특수부대원들이 상부와의 갈등, 부족한 처우, 좋지 않은 장비 등의 이유로 실망을 품고 보다 나은 소방공무원으로 전업한다는 이야깁니다. 119구조대 지원 자격 가운데 특수부대 부사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특전사)가 소방공무원 양성소냐'는 탄식은 그래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군 안팎에선 사상 최초로 ROTC 출신으로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한 남영신 대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야전 부대들에선 '현장을 아는 군인이 참모총장이 됐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육군 특전사령관도 역임했었기 때문입니다.

    특수전 부대가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게, 격파 시범을 얼마나 멋지게 펼칠지가 아니라 '처우와 장비 개선에도 신경써 달라'는 현장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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