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은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낸 병역법 일부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13일 국감에서 밝혔다. 이 법안은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를 대상으로 입영을 연기하는 게 핵심이다. 사진은 지난 2014년 8월 인권 교육을 받고 있는 한 부대 내부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지난 2018년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와 리패키지 앨범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Answer)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두 번째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몇몇 선수가 병역특례를 위해 선발됐다는 논란이 제기되며, 대중문화예술인으로 '국위선양'하는 방탄소년단의 병역 면제도 고려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고, 방탄소년단은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통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한국 가수 최초 1위, 2주 연속 1위를 포함해 7주째 1~2위권 내에 드는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성과가 쌓이고, 활약이 두드러질수록 방탄소년단은 '대중문화예술인 대상 병역특례'와 관련해 단골손님처럼 소환되고 있다. 멤버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진(김석진)이 올해 만 27세로 입대를 앞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지난달 3일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국가 위상과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해 추천한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에게 기존 대학생과 같은 수준으로 징집·소집 연기를 한다는 게 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병역 면제가 아니라 '연기'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병역법 제60조(병역판정검사 및 입영 등의 연기)에 따르면, △고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 △연수기관에서 정한 과정을 이수 중에 있는 사람 △국위선양을 위한 체육 분야 우수자에 대해서만 최장 만 28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전 의원은 "대중문화예술 등 새로운 분야에서 활약하며 성과를 내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타 집단과 동등한 수준의 권익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에 대해 징집·소집 연기가 가능하도록 개선해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병역 특례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가장 좋은 것은 좁은 의미의 특례가 좋을 거라 본다. 연기 쪽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병무청은 13일 국감에서 대중문화예술 우수자를 대상으로 입영 연기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알렸다. 모종화 병무청장은 이날 "가장 높은 수준의 추천 기준을 만들고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상한선까지는 연기를 고려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이 사안을 두고 문체부, 국방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 '국위선양 대중문화예술인'은 어떻게 정할까업계 관계자들은 보이그룹이나 남자 가수들에게 '입영 연기'가 허용된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가요계 관계자 A씨는 "보이그룹이 데뷔 후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데, 막상 잘되고 나면 군대에 가야 한다. 남자 아이돌은 입대 문제가 큰 걸림돌이라 (개정안이 통과되면) 여유가 생기고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엔터업계 관계자 B씨도 "연간 플랜을 짜는 회사들이 대부분이고 브랜드 가치가 정점일 때 갑자기 입영 통지서를 받으면 계획했던 것들에 차질이 생기는 부분이라 연기가 가능해지면 업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과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모두 1위에 오른 그룹 방탄소년단(사진 위). 아래는 지난해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단독 콘서트를 보러 온 팬들의 모습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취재에 응한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싱글 차트 1위, 전 세계 스타디움 투어,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 등 눈부신 성과를 내 '국위선양'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개정안 내 기준이 모호해 우수자를 어떻게 변별할지를 두고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 다른 엔터업계 관계자 D씨는 "연예 활동에 있어 제한이 줄어들기 때문에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특정 가수를 위한 일시적인 법안이 될 수 있어서 명백한 기준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 의무 중 하나로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체육 분야는 금은동 메달이 있지 않나. (대중문화예술계도)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B씨 역시 "연기 기준만 명확히 한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단서를 달았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 C씨는 "대학교·대학원 진학을 통해 음성적으로 연기해 왔던 것을 합법적으로 연기하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병역법 개정안 내용만 보면 여러 편법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대중문화의 성취를 '국위선양'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어느 선까지 도달해야 국위선양인가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니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K팝 해외 진출을 이야기할 때 정상을 차지한 사람의 공헌이 제일 큰가도 의문이다. 누군가는 K팝을 해외시장에 소개한 공헌이 있고, 누군가는 그걸 기반으로 K팝이란 장르의 팬층을 두껍게 했고, 다시 그걸 기반으로 누군가는 K팝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걸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정상에 올라야만 공헌이라 볼 것인가?"라고 바라봤다.
◇ '스피커' 자처하며 입영 연기를 '상'으로 제시하는 정치권
병역 의무를 시작할 기간을 늦추는 것이 훈장 수여와 같은 '포상' 개념으로 고안된 것은 현재 병영 문화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최태섭 문화비평가는 "징병제는 처벌이 아닌데 상으로 그걸 면제 혹은 연기한다는 발상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의 징병제가 사실상 '처벌'과 같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진단했다.
이 칼럼니스트 역시 "징집 대상의 의무 복무기간을 대폭 줄이고 병영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부대 내 불합리한 가혹행위를 근절시키는 등 군 현대화가 우선 아닌가? 적어도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방탄소년단에게 병역 특례를 줄 방법을 고민하는 대신, 팬클럽 '아미'(ARMY)와 가족들이 안심하고 방탄소년단을 흔쾌하게 군에 보낼 수 있는 병영을 만들 고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전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지난 8월 21일 발매한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로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에 진입하는 대기록을 썼다. '다이너마이트'는 13일 현재까지 7주째 1~2위를 오가며 선전 중이다. (사진=빌보드 공식 트위터)또한 당사자나 업계 관계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반영하기보다, 이 사안을 이슈로 만들어 손쉽게 편승하는 모양새를 취한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방탄소년단 멤버 중 입대가 가장 가까이 와 있는 진은 올해 2월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MAP OF THE SOUL : 7) 발매 기념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입대 관련 질문에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사실 말씀드리기가 굉장히 조심스럽다"면서도 "병역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응할 예정"이라고 답한 바 있다.
가요계 관계자 C씨는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정치권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중문화예술업계 전반의 의견을 수렴한 건전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최 비평가는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자꾸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대중의 관심을 사기 위한 가벼운 발상이다. 병역제도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꼬집었다.
이 칼럼니스트는 "방탄소년단도 '병역은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나라의 부름이 있다면 언제든 응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팬들도 그 결정을 지지하는데, 정치권이 자꾸 방탄소년단의 화제성을 빌리는 식의 입법 활동을 하려는 건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지금 가장 뜨거운 그룹인 BTS에게 이득이 되는 법안을 발의하면 의원 개인의 인기나 인지도에 득이 될 것을 노리고 법안을 설계한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