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왼쪽), 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자료사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면 겨냥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바로 다음날 추 장관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번번이 대립함에 있어 그간 한 발짝 떨어져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었던 청와대가 이번에는 "수사지휘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추 장관의 편에 선 것이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정치권에서 거센 공방을 불러일으키자 청와대가 교통정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윤 총장의 사퇴를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로 해석되고 있다. 이 과정에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靑도 與도 예측못한 추미애 깜짝 지휘권 발동, 靑 곧바로 힘 실은 이유?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헌정 사상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추 장관은 자신의 임기에서 두 번째로, 불과 석 달만에 카드를 꺼냈다. 지난 7월 '채널A기자 강요미수 사건'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데 이어 이번에는 라임자산운영 정관계 로비 의혹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가족 및 주변 의혹 등 총 5건에 대해 윤 총장이 손을 떼라고 지시했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여권에서도 예상치 못한 깜짝 결정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추 장관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 여당에서도 바로 방어는 했지만 예상을 못해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사전에 미리 보고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장관에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도록 지시하거나 장관으로부터 수사지휘권 행사 여부를 보고받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청와대 전경(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하지만 청와대는 추 장관의 다소 돌출적인 지휘권 발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수사지휘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신속하고 성역을 가리지 않는 엄중한 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추 장관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한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고 야당에서 '윤석열 찍어내기'라는 성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는 그간 법무부 장관과 수사 기관의 수사 직무에 개입하거나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면서도 "'성역없는 엄중한 수사를 위해 청와대가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런 원칙 하에 입장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반부터 라임·옵티 사건에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위해 전폭적으로 협조하라"고 지시를 내렸던 만큼,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도 이같은 '성역없는 수사'를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는 것.
◇文대통령 의지 반영됐나, 일정 거리두던 靑 하루만에 '성역없는 수사' 입장 발표청와대가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을 내린지 하루도 안 돼 지지 입장을 낸 것은 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날만 해도 청와대 참모들은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 상황을 지켜보면서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앞서 지난 7월 추 장관이 윤 총장 최측근을 겨냥해 '채널A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을 때도 청와대는 논평을 따로 내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와 검찰총장의 강렬한 대립 상황에서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했던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추 장관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과 윤 총장을 보는 시각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윤 총장과 관련된 여러 사건에서도 '성역없는 수사'를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윤 총장의 사퇴를 강하게 압박하는 수단으로 해석되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입장 표명으로 윤 총장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사가 진행중이며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 구도에 개입하게 된 것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윤 총장은 이번 정권에서 검증을 마쳐 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인물로, 청문회 당시 여권이 옹호했던 사건들도 포함돼 있다"며 "이를 다시 끄집어내 성역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자가당착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실장은 이어 "청와대가 윤 총장의 사퇴를 바란다면 보다 솔직하게 입장을 정해 단계를 밟아야지, 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고하거나 압박하려 한다면 오히려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