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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단독]정부, 원전 주변 주민 '암 발병' 10년 만에 재검증 (계속) |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운영이 인근 주민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대규모 역학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2011년 발표된 정부의 조사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각계 지적을 수용해 약 10년 만에 재조사에 나선다.
◇정부, 10년 만에 원전 주민 '건강영향조사' 추진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원전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영향조사'에 착수한다.
이번 역학조사는 환경부가 키를 잡는다. '어떤 환경유해인자(유해물질)로 인한 건강피해가 우려되거나 의심되는 지역 주민에 대해 (정부가) 역학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환경보건법 제15조에 따른 것이다.
또 환경정책기본법 제34조에는 방사성 물질에 의한 환경오염과 그 방지를 위해 정부가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문구도 나온다. 원전 인근 주민들의 질병이 유해물질인 원전의 방사성물질로 인한 것이라는 정황이 있어 정부가 나선 셈이다.
이번 조사는 '선행 조사'에 대한 오류를 정부 스스로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91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원전 인근 주민 3만6천명을 조사했고, '원전과 암 발병 사이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연구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계속 제기됐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연구팀은 2013년부터 2년간 연구 결과를 재검증하는 후속연구를 진행했다. 백 교수는 이 연구에서 "원전의 방사성물질과 암 발병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정반대 결과를 발표했다. 원전 주민들의 건강 상태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이 검증된 셈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8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중심으로 원전 주변 주민 11만명의 건강영향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법 제정을 둘러싼 국회 논의가 지체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월성 원전 주민 역학조사…민관 협의체 구성해 신뢰도·투명성 확보
(사진=연합뉴스)
이번 역학조사의 주체는 환경부지만, 제대로 된 조사 진행을 위해서는 원안위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등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원전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자유로운 출입은 물론이고, 원전의 방사성물질 배출 데이터 등 핵심 자료들이 모두 원안위와 산자부 산하 한국수력원자력 소관이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원안위, 산자부 등 3개 부처는 최근 수개월간 수차례 국장급·과장급 회의를 통해 개괄적인 원전 주변 주민건강영향조사 추진방안에 합의했다.
우선 조사의 범위다. 정부는 우선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이 도입된 월성 주변 주민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을 방침이다. 중수로 원전은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경수로 원전보다 10배나 많은 양이 주변에 방출된다. 국내 원전 중 중수로형 원전은 월성 1~4호기 뿐이다.
정부는 조사 방식으로는 '역학조사'를 택했다. 월성 원전 가동 초기(198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의 방사성물질 배출량을 점검하고, 기존에 검증한 자료뿐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료들까지 폭넓게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차후 조사 결과를 이해 관계자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구 진행 상황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방침이다. 조사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와 원전 주민 대표 등이 모두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가 구성된다. 이곳에서 관계부처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조율하고, 주요 조사 사항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예정이다.
◇1~2년간 최소 20억원 들여 조사 진행…주민피해 보상까지 논의이번 조사는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에 걸쳐 진행된다. 올해 예산안 심사에서 국회가 결정한 예산 규모에 따라 조사 범위와 기간, 대상이 전부 결정되는 구조다. 정부는 내년 한 해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4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역학조사 결과에 대한 후속조치도 논의되고 있다. 환경부는 조사 결과를 관계기관에 즉시 통보하고, 문제해결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즉시 마련된다. 문제해결 방안에는 주민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도 포함된다. 만일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로 인해 암에 걸렸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최근 수년간 정부를 상대로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해온 원전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중재자' 양이원영 의원 역할 빛났다 …"국가라면 책임져야"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해 관계가 서로 다른 부처들이 의견을 조율해 합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탈핵 운동가' 출신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있었다. 양 의원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에너지 전문가로 지난 20년 동안 원전 주민들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왔다.
양 의원은 3개 부처의 국장급 회의를 직접 주관하는 등 상당한 의지를 갖고 원전 주민 건강영향조사 재실시를 추진했다고 한다. 환경부에서 이번 조사를 총괄하고 있는 하미나 환경보건정책관은 지난 2015년 서울대 백 교수 연구팀에서 선행 연구에 대한 후속연구를 진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양 의원은 "이번 조사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서 "(정부가) 원전을 가동하면서 안전 문제가 발생했고, 그것으로 인한 주민 피해는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는 게 맞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월성 주민들은 5년 넘게 농성을 하며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 건강영향조사라도 해야 하고 거기서부터 시작이다"며 "조사 추진부터 진행 과정 모두 쉽지 않겠지만, 지금(문재인) 정부라서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