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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큰 별'이 남긴 족적…'총수 이재용'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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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 큰 별'이 남긴 족적…'총수 이재용' 시대 개막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조직을 이끄는 이른바 '이재용 시대'가 본격 도래했다.

    ◇'재계 큰 별' 이건희 회장 별세…향년 78세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여만인 25일 별세했다.

    급성심근경색이 발발한 뒤 이 회장은 자택근처인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서울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저체온 치료 등을 받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입원 6개월 부터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로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고인은 6년 5개월동안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누구인가

    고 이건희 회장 유년 시절(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은 1942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대구에서 출생했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 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부친이 별세하자 당시 46세이던 이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 회장은 "세기말적 변화가 온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제2의 창업'을 선언한 바 있다.

    이후 1993년에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내놓았고, 일종의 '쇼크 요법'으로 전 직원을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도록 한 이른바 '7·4제'를 전격 결정했다.

    1995년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15만 대에 달하는 휴대전화 불량품을 불태운 '휴대전화 화형식'은 이 회장의 카리스마를 상징했던 일화다.
    198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사진=연합뉴스)

     



    이후 이 회장은 신경영 10주년인 2003년 '천재경영론', 2010년 '위기론', 취임 25주년인 2012년 '창조 경영' 등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변혁을 강조해왔다.

    ◇삼성을 깨운 이건희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

    신경영 선언하는 고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지난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사장단을 소집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진단이었다.

    실제로 당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1993년 2월, 이 회장이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현지 'Best Buy'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충격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이대로 있으면 삼성이 삼류, 사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 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바랐다.

    마침내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量)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質)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꺼내들었다.

    ◇'삼성의 반도체'…이건희 '뚝심'없이 가능했을까

    정계최고 경영자 전지 세미나 참석한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스마트폰 등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지만 1990년대까지도 시장에서는 '이류'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1983년 2월, 당시 세계 반도체의 중심이었던 일본 도쿄에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앞서 이건희 회장은 온갖 비난을 받아가며 1974년 파산 직전에 놓여있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 반도체'의 기틀을 잡았다.

    1980년대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의 D램 시장 점유율은 당시 70%를 넘었다.(2020년 2분기 현재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73.6%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기술을 수입해 TV를 조립하던 삼성전자가 돌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하니, 순식간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실제 일본은 '한국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칼럼을 통해 '삼성의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GDP와 교육 수준이 담보된 국가에서만 감당해낼 수 있는 최첨단 산업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삼성전자의 '무모한 짓'은 세계를 놀라게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이병철 선대회장 타계 이후,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반도체 집념'도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는 엔지니어들을 직접 불러 의견을 물어보고, 의사결정의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사용했다.

    일례로, 1989년 D램의 크기가 4메가를 넘어가자 D램의 저장소 형태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밀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 구조물들을 웨이퍼 표면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했는데 그때 나온 대안이 트렌치(trench·참호)형과 스택(stack·위로 쌓음)형이었다.

    반도체 16라인 가동식 참석한 고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두가지 모두 지금까지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수율과 특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진대제, 권오현 박사가 무언가 잘못됐을 때 구조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스택 방식이 더 좋다고 보고했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받아들였다.

    당시 후발 업체였던 삼성전자는 IBM, 도시바, NEC 등의 주요 기업들이 트렌치를 택하는 와중에도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소신대로 밀고나갔다. 결국 이 결정은 옳았고, 4메가 D램 개발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삼성전자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 D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번도 세계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1994년에는 세계 최초 256Mb D램 개발에도 성공했다.

    또한 2003년 플래시메모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2011년 모바일 AP 'Exynos' 론칭, 2013년 세계 최초 3차원 V낸드 양산 등 삼성은 반도체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삼성 지배 구조 어떻게 변할까…상속세는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지난 23일 종가 기준으로 18조 2251억원이다.

    구체적으로 이 회장의 보유 주식은 지난 6월말 기준 삼성전자 2억 4927만 3200주(지분율 4.18%)로 평가액은 15조원이다. 이 밖에 삼성생명 4151만 9180주(20.76%) 26조원, 삼성물산 542만 5733주(2.88%) 5643억원, 삼성전자 우선주 61만 9900주(0.08%) 330억원, 삼성SDS 9701주(0.01%) 17억원 등이다.

    이 회장은 이들 4개 계열사의 최대주주거나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으로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이다. 따라서 상속세만 무려 10조 6천억원 상당이 된다.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는 이 세금을 부담하고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세금 규모가 천문학적인 만큼 재계에서는 분할납부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지분 중 상당 부분을 사회공헌 차원에서 환원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 비즈니스 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상속과 함께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보험업법 개정도 맞물려 있어 삼성의 지배구조가 개편될지도 관심거리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총 자산의 3%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초과하는 지분은 모두 매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처분 규모만 20조원 규모가 된다.

    또 삼성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 주식 57.25%을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이재용 부회장 지분율이 20.76%라는 점에서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따라 삼성의 지배구조에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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