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영화 '미나리'의 리 아이작 정 감독, 배우 스티븐 연, 윤여정, 한예리.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어느 한국 가족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를 위해 모인 감독과 배우들은 누구보다 진실하게, 정직하게 이민자의 삶을 포착해 그려낸다.
지난 23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미나리' 기자회견이 열렸다.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진행 아래 리 아이작 정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윤여정, 한예리가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아칸소 출생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찍은 데뷔작 '문유랑가보'(2007)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연출력을 인정 받았고, 이후 '럭키 라이프'(2010) '아비게일 함'(2012) 등을 연출했다.
그의 신작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 아칸소주(州)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2020년 선댄스영화제 드라마틱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미나리'에 담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미나리'라는 독특한 제목은 감독의 과거 기억에서 비롯됐다. 감독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할머니가 미나리 씨앗을 가져와 심으셨다. 미나리는 우리 가족만을 위해 심고 길러진 작물"이라며 "제목은 처음부터 '미나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미나리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감정을 잘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은 "대본 작업을 할 때 책 '나의 안토니아'에서 작가 윌라 캐더가 자신의 기억에 진실하게 다가가려 한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나도 작가처럼 내 기억을 정말 진실하게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씩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가족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나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본을 쓰다 보니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장편 픽션이 됐다"며 "내 이야기에서는 영감을 받은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배우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창조해 나가면서 각각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3일 열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미나리' 온라인 기자회견에 참석한 리 아이작 정 감독과 스티븐 연, 윤여정, 한예리가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감독의 진실한 이야기를 따라 '미나리' 속으로 들어온 배우들이민자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특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스티븐 연은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오기 전 캐나다로 먼저 이주했고, 이후 미국 서부 한적한 시골에서 살았다. 영화의 경험과 비슷하다"며 "감독님이 만든 내용을 보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감독님 이야기뿐 아니라 많은 한국계 미국인이 겪은 이주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윤여정과 한예리가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작업에 함께했다. 그들은 '미나리'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로 감독을 꼽았다. 그리고 영화 안에 담긴 '진짜' 이야기에 끌렸다.
윤여정은 "지금은 사람을 보고 일을 하는데, 아이작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진지하고 순수해서 마음에 들었다"며 "그리고 아이작 감독이 썼다는 걸 모르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이야기가 정말 진짜 같았다. 내게 작품을 소개시켜 준 사람에게 이게 진짜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예리도 "이상하게 나는 영어를 못 하지만 감독님과 잘 소통하며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내가 맡은 모니카는 한국적인 부분을 많이 가진 인물이다. 우리 주변의 엄마, 이모, 할머니를 통해 봤던 모습이 모니카 안에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겠다, 감독님과 어떻게든 모니카라는 사람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티븐 연 역시 작품 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삶이 투영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며 내가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 소속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간의 중간 틈에 껴 있는 느낌"이라며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이 훨씬 끈끈하게 연대하고 결속할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영화 안에 나와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제이콥을 연기하면서 나의 아버지가 제이콥과 안팎으로 많이 닮았고, 살기 위해 녹록지 않은 삶을 이겨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나도 아버지고 남편으로서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미나리'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배우들의 열연과 호흡, 미들버그 영화제 '앙상블 어워드' 수상으로 입증
'미나리'는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연기력과 인기를 자랑하는 세 배우를 한 작품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제8회 미들버그 영화제에서 앙상블 어워드(배우조합상)를 받으며 연기력과 호흡을 인정받기도 했다.
감독은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는 최고이기 때문"이라며 "윤여정 선생님이 맡은 캐릭터는 정직한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윤 선생님이 여기에 딱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모니카는 외유내강의 인물이다. 영화의 목적이 잘 녹아든, 영화의 중추 역할을 하는 캐릭터인데 한예리 배우에게서 모니카의 모습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이콥은 우리 아버지일 수도 있지만, 나의 많은 모습이 투영돼 있다"며 "그런 제이콥을 훨씬 더 깊은 결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스티븐이라고 생각했고, 스티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스티븐 연은 '미나리'를 통해 경험한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작품을 볼 관객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는 "각자 안에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가 이 영화를 하면서 배우로서 배우게 된 부분이 있다. 서로가 다 연결돼 있고, 서로가 없이 우리 혼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미나리'가 세대간 이해, 소통을 돕는 힐링 포인트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