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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기]K팝 한류는 어쩌다 中 '항미원조' 타깃이 됐을까

문화 일반

    [파고들기]K팝 한류는 어쩌다 中 '항미원조' 타깃이 됐을까

    홍콩 민주화 시위 이어 '항미원조' 논란에 한류 '흔들'
    공고한 세계화…동아시아 정세 따라 문화적 가치 충돌
    미중 관계 악화일로에 한류 중심인 K팝까지 딜레마 직면
    "자국 중심 평행선 싸움…가치 충돌 조정에 초점 맞춰야"

    중국인 엑소 멤버 레이가 게사한 한국전쟁 항미원조 70주년 기념글. (사진=레이 웨이보 캡처)

     

    홍콩 민주화 시위에 이어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가 한류를 뒤흔드는 화두로 떠올랐다.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시장으로 확장되면서 동아시아의 특수한 역사관계에 따른 가치충돌이 갈수록 거세지는 탓이다.

    북미에서 독보적 인기를 자랑하는 K팝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최근 중국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사건의 불씨는 리더 RM이 지난 7일 미국 비영리재단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밴 플리트' 시상식을 통해 전한 수상소감에서 비롯됐다.

    밴 플리트상은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RM은 이 자리에서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독한 한미 우방관계에 뿌리를 둔, 시상식 취지에 걸맞는 소감이었지만 중국 내 반응은 180도 달랐다. 대다수 중국 여론은 이를 정치적 발언으로 규정,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한미 양국에 한정하는 것은 한국전쟁 참전 중국군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역시 이런 중국 내 반응을 발빠르게 전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K팝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중국인 멤버들이 '항미원조' 선전 활동에 동참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방탄소년단에 강력 반발했던 중국 여론처럼 한국 대중 사이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엑소 레이, 에프엑스 출신 빅토리아, 우주소녀 성소·미기·선의, 프리스틴 출신 주결경 등은 지난 23일 자신의 중국 SNS에 '항미원조' 70주년을 언급하면서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자'는 글을 올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의 한국전쟁 역사왜곡 동조하는 중국인 연예인들의 한국 활동 제재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글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한국에서 데뷔해 인지도를 쌓은 중국 연예인들이 같은 중국인들과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선동에 힘을 싣고 있다"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돈과 명예를 얻은 그들이 파렴치한 중국의 역사왜곡에 동조한 뒤 뻔뻔하게 한국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강력한 제재를 걸어달라"고 촉구했다.

    위부터 '항미원조'를 무시했다며 중국에서 비판 받은 방탄소년단과 아래 시계방향으로 '항미원조'를 지지해 한국에서 비판 받은 엑소 레이, 에프엑스 출신 빅토리아, 프리스틴 출신 주결경, 우주소녀 선의, 미기, 성소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 제공, 우주소녀 SNS 캡처)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금지령) 등 전례가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가 없다. 그만큼 표면적으로나마 문화 영역은 불편한 정치·역사적 논쟁과 별개로 자유롭게 소비돼 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올해 들어 '항미원조' 논란이 문화계까지 난입하게 된 것일까.

    이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정부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항미원조' 정신을 고취시키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데뷔 후 주로 중국 활동에 매진한 자국 연예인도 이러한 선전 활동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방탄소년단처럼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스타의 발언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K팝 아이돌 그룹이 본의 아니게 중국과 얽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에도 국내 활동 경력이 있는 중화권 출신 연예인들이 과잉 진압으로 비판받은 홍콩 경찰을 일제히 지지해 논란을 빚었다. 지금까지도 이들 연예인 명단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보이콧 블랙리스트'로 공유되고 있다.

    미중 관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K팝 중심 한류 산업에서 자국 이해관계에 뿌리를 둔 가치충돌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애초에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꽃핀 한류의 태생적 한계이자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사실 문화적 가치 영역에서는 정치·역사 문제도 무마되는 측면이 있지만 미중관계가 신냉전 구도로 가는 이상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더욱이 한류는 이미 북미까지 세계화가 진행됐다. 이 세계화 성과는 지역과 민족의 관심사에 맞춰 평가 받고 가공된다. 그래서 민족주의적 이해관계에 반할 경우 충돌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반중 정서'는 이데올로기 영향까지 받아 더욱 그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00년대부터 한류를 통해 동아시아 주류 문화가 한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만큼, 이제는 애써 외면해 왔던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셈이다.

    이 평론가는 "90년대부터 학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예측된 바 있다.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은) 교육을 통해 이뤄진 자국 관점에 바탕을 뒀기 때문에 '항미원조'를 주장하는 중국 연예인들도, 한미 희생을 강조하는 한국 연예인도 사실 관계를 따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면서 "'반중'은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문제까지 섞여 더 큰 난관이다. 이는 서로에게 이득 없는 평행선 싸움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 만큼, 가치충돌을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고들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 깊숙한 곳까지 취재한 결과물을 펼치는 코너입니다. 간단명료한 코너명에는 기교나 구실 없이 바르고 곧게 파고들 의지와 용기를 담았습니다. 독자들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통찰을 길어 올리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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