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력·뇌물수수 혐의 사건을 '부실 수사'한 의혹을 받는 검사들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직권남용 혐의와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고발된 검사 4명을 지난달 29일 불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3년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동영상으로 촉발된 '별장 성폭력' 의혹을 두 차례에 걸쳐 수사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번번이 꺾고 김 전 차관에게 두 번 모두 불기소 처분(혐의없음)을 내리면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 휩싸였다.
◇ '김학의 사건' 1·2차 수사 검사들, 직권남용 혐의 피고발한국여성의전화 등 37개 단체는 지난해 12월 김 전 차관 사건의 1·2차 수사 검사 및 불기소 처분 검사 4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했다. 지난 7월에는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사건은 서울경찰청 지수대에 배당됐다.
단체들은 고발장에 "경찰에서 성폭력 피해 진술이 됐음에도 피해 여성 3명에 대해 검찰은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을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며 "이미 조사된 범죄 혐의 중 경찰에서 송치된 죄명에 국한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무혐의 처리를 한 것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촉구했으나, (검찰) 조사단이나 특별수사단 그 누구도 이를 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들은 특히 "경찰 수사 후 사건 송치 처리상의 문제가 있다"며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남용해 외압을 가했는지 여부를 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당시 검찰 조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피해여성 A씨 측은 "2013년 경찰 조사에서 피해 내용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담당 검사가 A씨의 피해 진술을 다시 듣기보다는 사소한 세부 내용의 차이를 트집 잡는 방식으로,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하는 신문 방식으로 일관된 조사가 이뤄졌음이 피해자 진술조서의 기재 내용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신문 및 진술의 흐름과 달리,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이후 피해자 조사 전에 피해자에게 가족의 형사처분 사실을 언급하면서 피해자 집안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 피해자가 위축된 상태에서 진술하도록 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성폭력 범죄 전담 검사가 조사하도록 조치하지 않은 점 △조사 당시 신뢰관계자 동석을 금지한 것 △검사가 한 말이 피해자의 답변으로 돼 있는 등 조서 내용이 잘못 기재돼 있는 점 등을 문제로 언급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경찰, 10개월여 수사 끝에 "혐의 성립 어렵다" 결론10개월가량 수사를 이어 온 경찰은 '혐의 성립이 어렵다'고 최종 판단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누군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적용된다.
경찰은 지난해 3번째 수사에 나선 대검찰청 특별수사단이 '수사 외압' 의혹 전반을 조사했지만, 검사들이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 없다'는 취지로 해명한 사실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경찰 조사에서 앞선 자신들의 주장을 뒤집을 가능성이 낮은 점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강제수사 카드는 꺼내 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일부 자료를 검찰로부터 임의제출 받았지만, 1·2차 수사일지 등 핵심 자료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관련 자료 제출 등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변호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2013년과 2014년 검찰 조사 당시 녹화한 영상을 A씨의 검찰 조서와 대조해보기 위해 지난 3월 검찰에 영상 제공을 요청했으나, 검찰이 여러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며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의 '별장 성폭력' 의혹은 지난 2013년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접대 등 향응을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검찰 수사가 있었으나, 검찰은 '동영상 속 여성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며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은 2013년 공개된 영상을 바탕으로 인지수사에 착수했고,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송치했다. 당시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통신·체포·압수·금융영장을 모두 8차례 기각했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김 전 차관에게 불기소 처분(혐의없음)을 내렸다.
이듬해 여성이 김 전 차관을 재차 고소했지만, 검찰은 소환 조사 없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 사건을 3차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단은 2006~2008년 윤씨에게 1억 3천만 원 상당의 뇌물과 13차례에 걸친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김 전 차관을 구속기소했다.
지난해 11월 1심 재판부는 금품수수의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판결문에 "2007년 11월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촬영된 '성접대 사진' 속 남성은 김 전 차관일 수밖에 없다"고 명시했다.
지난달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2000~2011년 건설업자 최모씨에게 43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김 전 차관이 2006~2008년 윤씨에게 13차례 성접대를 받은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윤씨에게 1억 3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무죄 또는 면소 판결했다.
◇ "당시 검찰 수사 행태, '수사권한 남용'과 같다"
앞서 A씨의 변호인단은 "당시 검찰의 수사 행태는 일종의 수사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며 "검찰은 '성접대' 프레임으로만 이 사건을 바라보고 김학의의 죄를 덮기 위해 피해 여성들의 진술은 허위로 만들고, 피해자들 서로의 진술을 이용해 탄핵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진술을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방식으로 주요 가해자 중 한 명인 검찰 출신의 김학의에게 면죄부를 주고 사건을 무마했다"고 했다.
김 전 차관과 윤씨가 지난해 5월 기소된 것을 두고는 "김학의는 '성범죄'가 아닌 '뇌물'로 기소됐다. 2013년, 2014년 당시 수사는 잘못됐다고 했지만, 그 사건 관련자 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A씨가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특수강간 등 혐의로 재고소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