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사진=이은지 기자)
국내 코로나19 확진세가 73일 만에 다시 200명을 넘어서며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전국노동자대회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다만, 방역당국의 지침을 지키기 위한 현장의 노력도 이어졌다.
14일 민주노총은 전날이었던 고(故)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아 오후 2시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여의도공원 1문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전 열사의 기일을 전후해 매해 노동자대회를 열어 온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유행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대규모 단일 집회가 아닌 '산발적 분산' 집회방식을 택했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서는 '99명' 이하가 모이는 집회만이 허용되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이날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외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대방역·마포역·합정역·더불어민주당 당사 앞 등 서울 20여곳으로 흩어져 각각 99명 규모의 집회를 신고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집회장소에 펜스를 두르고 경비 중인 경찰들.(사진=이은지 기자)
민주노총 측은 노동자대회 시작 전부터 출입명부를 비치해 명단을 작성한 이들만이 참가표를 받고 경찰이 둘러놓은 펜스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했다. 발열 점검도 물론 함께 이뤄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전태일 3법 입법', '노동개악 저지' 등의 문구가 적힌 까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 위에 비말(침방울)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얼굴 덮개(페이스 쉴드·Face Shield)를 한겹 더 덧씌웠다.
또한 차도 바닥에 그대로 앉지 않고, 주최 측이 미리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해둔 의자에 착석해 방역당국의 지침을 준수하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로 육안으로 봤을 때 펜스 안에 자리한 인원은 70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다만, 차도 옆에 위치한 공원 잔디에 앉거나 서서 대회를 참관한 참가자들도 40~50명 정도 있었다. 확산세가 커지는 상황에서 추가감염 우려가 있는 집회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민주노총 측은 펜스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적정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당부를 수차례 남겼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를 펜스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참가자들.(사진=이은지 기자)
사회를 맡은 민주노총 양동규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집회 틈틈이 "대회장 밖에 계신 동지들도 방역 협조를 위해 좌우 간격을 충분히 벌려 주시고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좌우로 팔을 벌려 밖에서도 널찍 널찍하게 앉아주시면 좋겠다"고 거리두기를 독려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활용이 보편화된 온라인 화상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전국과 서울의 다른 집회장소들을 연결하는 풍경도 연출됐다. 양 비대위원장은 "우리는 전태일의 열망을 완성시키기 위해 오늘 어려운 조건이지만, 전국 13개 지역에서 힘차게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김재하 비상대책위원장은 "코로나가 전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그나마 방역의 모범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한 우리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이었다"라며 "우리는 그 어렵다는 국회 10만 입법청원을 돌파했고, 이제는 모든 이들이 '전태일 3법'을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 삼아 '가진 자'들의 탐욕을 마음껏 채우려 하는 노동악법의 통과를 막아야 한다. 50년 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했던 전 열사의 외침이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전태일 3법을 쟁취하는 것임을 명심하자"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국회 본회의 일정이 확정됐다. 비상 시기인 만큼 비상한 각오로 투쟁에 임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민주노총이 선정한 '50인의 전태일'이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소속과 이름, 바람이 담긴 팻말을 들어 보이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이들은 "장애인활동사로 최소한의 안전대책매뉴얼도 없이 장애우들을 돌보고 있는 코로나 시기 필수노동자"(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강광철) 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해직자 원직복직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하라"(해직공무원 김민호)고 촉구했고, "학교비정규직 법제화로 유령신분 끝장내고 당당한 교육의 주체로 살고 싶다"(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박윤숙)고 토로하기도 했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 이후 이어진 전국민중대회.(사진=이은지 기자)
연이어 오후 3시 15분쯤 개최된 전국민중대회에서도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본대회에 앞서 전국여성연대 한미경 상임대표는 "오늘 대회는 이후 전국에서 차량시위가 이어지는 만큼 약 30분 동안 가능한 짧고 간결하게 진행하도록 하겠다"며 "이 대회가 끝난 뒤에도 모여서 식사하신다든지 개별모임을 갖는 것은 자제해주십사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민중대회는 전국노동자대회보다 인원이 다소 빠진 상태에서 진행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민중 생존권 쟁취하자!", "사회 불평등 해소하자!",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아울러 △노동개악을 중단하고 전태일 3법을 입법할 것 △식량주권을 확보하고 농민기본법을 제정할 것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에 대한 강제철거를 중단하고 주거권을 보장할 것 △해고를 금지하고 전국민고용보험을 실행할 것 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이날 경찰은 여의대로 집회장소 부근에 100여개의 부대에 7천여명의 경력을 동원,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은 방탄복을 착용하고 얼굴에 마스크와 얼굴 덮개를 쓴 채 펜스 둘레를 에워싸 행인들이 펜스 근처로 모여드는 것을 방어했다.
이에 따라, 당초 우려와 달리 이날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불법 도로점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일부 단체의 도로점거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채증자료 분석을 통해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