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한 명당 연간 353잔. 2018년 통계청에서 집계한 국내 커피 소비량입니다. 세계 평균 소비량 132잔의 약 2.7배에 달하고, 국내 커피전문점 매출액은 43억 달러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입니다.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피, 특히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한겨울에도 아이스 커피 인기는 뜨겁기만 한데요, 정작 커피를 생산해내는 식품 기기에 대한 안전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편집자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식약처와 관세청은 수입 신고 없이 불법으로 제빙기와 온수기 등을 국내에 유통, 판매한 롯데칠성음료 등 16개 업체를 적발, 검찰에 송치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정작 '무혐의'로 결론 낸 사실이 C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현행법과 관련 고시에 "제빙기 식품 안전 검사 필수 항목이 명시돼 있지 않아 알지 못했다"는 업체들의 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적발은 최근 카페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제빙기 등이 식약처에 수입 신고 없이 불법으로 국내에 수입·유통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서 시작됐다. 관세청과 식약처는 "수입 신고한 신고내역 등을 연계 분석해 해당 업체들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불법행위를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식약처나 관세청 설명대로라면 불법을 저지른 기업도 문제지만, 각 제보를 받고 단속에 나서기 전까지 수년간 무허가 식품기기가 유통돼도 이를 방치해온 관리 당국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신고 요건과 관련한 법규가 모호한데다, 식약처와 관세청이 각각 부처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협업이나 정보 공유가 되지 않으면서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안전 평가에 커다란 '구멍'이 드러났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관세청·식약처 "수입 유통과정에서 작은 허점도 있어선 안 돼"…검찰 "신고 의무 기재돼 있지 않아"
관세청 인천본부세관(사진=인천세관 제공)
지난 18일 인천지검은 "피의자가 수입 신고 대상에 해당하는 '제빙기'를 신고하지 않고 수입, 판매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현행 수입식품법이 '수입 신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고, 산업통상자원부의 통합공고에도 '수입식품법에 따른 신고 의무'에 대해서는 기재돼 있지 않다"면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수입식품법 신고대상인 '수입 식품 등'은 '해외에서 국내로 수입되는 식품, 식품첨가물, 기구, 용기·포장'이라고 규정한 반면, 수입식품법 시행규칙 별표9 제1항 마목에서는 '식품 등의 제조·가공·조리·저장·운반 등에 사용하는 기계류와 그 부속품'에 대해서는 '수입 신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제빙기가 별표9에 해당해 수입 신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또 "산자부 통합공고에도, 전파법상 신고만 하도록 규정돼 있고, 수입식품법에 따른 신고 의무에 대해서는 기재돼 있지 않다"면서 "이는 뜨거운 음료 제조용 기구에 대한 '통합공고'에 '수입식품법에 따른 신고를 해야한다'고 기재돼 있는 것과 대비된다"며 제빙기 등 수입 식품 업체의 말을 들어줬다.
아울러 이 사건 제빙기 신고 담당 관세사가 '수입식품법 및 통합공고에 비춰 당연히 제빙기는 수입식품법상 수입 신고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안내했다"며 "단속된 업체와 담당 관세사들도 모두 같은 주장을 하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고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식약처는 이에 대해 "몰랐다는 것은 참작하는 것일 뿐, 그렇다고 불법이 불법이 아닌 게 되지는 않는다"면서 "해외 식품 안전 기준과 국내 식품 안전 기준은 엄연히 다르고, 특히 판매를 목적으로 들여온 것이라면, 식품 안전 검사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식약처와 식품 업계 등에 따르면 유럽이나 중국, 미국보다는 국내 식품 안전 기준이 더 까다롭고 엄격하다는 평가다.
식약처와 인천본부세관은 "이들 물품은 국민이 직접 섭취하는 식품류에 접촉하는 제품들로, 국민의 건강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수입 유통과정에서 작은 허점이 있어서도 안된다"면서 "검찰 판단과는 별개로 수입 업무 정지 등의 행정처분은 따로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 기사
◇ 7년간 11만 2천여 개 불법 수입, 통관 절차 '허술' 법은 '모호' "관세사도 몰랐다"{IMG:3}수년간 16개 업체가 국내 식품 안전 검사도 받지 않은 식품 기기를 버젓이 유통, 판매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입 통관을 총괄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시스템 부재 탓이 크다는 평가다. 식약처-관세청이 관련 규정을 따로 고시하고, 서로 관여하지 않으면서 빈틈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식품에 접촉하는 기기는 식약처 수입신고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입요건을 수입자가 알 수 있도록 통합공고와 세관장확인대상물품으로는 지정되지 않았다"는 게 관세청측 설명이다.
현행 법령상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적합성 평가확인(전파법)은 국립전파연구원, 전기안전인증은 국가표준기술원에서 감독하고, 수입 식품 안전 검사는 식약처에서 각각 관리한다. 관세청은 통합공고와 세관장 확인대상 물품으로 신고된 것만 관리한다. 감독의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인천항에 반입된 수입 물품을 통관하기 위해서는 세관에 수입 신고를 한다. 이들 수입 식품이나 관련 기기들은 세관 통과 전에, 식약처에 전산으로 '수입 식품 및 기기' 관련 신고를 마쳐야 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수입 물품들이 인천항을 통과하는 순간, 내국 물품으로 분류되므로, 수입 식품 기기를 들여왔다면 반드시 인천항에서 식약처에 수입 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세관에서는 관세청 검사 항목인 전파인증과 전기인증서를 제출받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절차가 있긴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보듯 식품 수입 신고 여부는 결국 수입 업자 양심이나 관련 지식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지난 7년간 11만여 개의 수입 제빙기 등이 유통, 판매됐지만, 16개 업체는 단 한 차례도 식품 안전 검사를 받지 않았다. 반대로 매번 수입 신고를 해온 업체는 "우리만 바보가 된 것"이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관세청에서는 단 두 가지 서류만 확인하다 보니, 세관 통과시 업자가 수입 식품 기기 신고를 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식품 기기 업계 관계자는 "해외 여행객이 명품이나 술 등을 잔뜩 싣고서도, 귀국할 때 세관 신고를 속이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매번 수입되는 제품 모두를 다 뜯어볼 수도 없고, 수입 식품 기기 역시 업자의 양심에 신고 여부를 맡겨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산자부 통합공고에 세관 고시만 있고, 식약처 고시가 빠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빙기 신고 담당 관세사가 '제빙기는 수입식품법상 수입신고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안내했다'는 것은 서로간 업무 협력이나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았던 셈"이라며 비판했다.
◇ 무신고 제빙기 업체, "고의성 없었다지만"…정식 수입사나 납품받은 커피숍·식당 등은 어떻게이로 인한 피해도 빗발친다. 지난 상반기에는 한 수입 식품 기기 업체가 중국 유통망을 통해 국내 유명 브랜드 제빙기를 무신고로 들여와 판매하다 적발됐다. 문제가 된 제빙기는 모두 회수·폐기 조치된 상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캠핑 열풍이 불면서 가정용 제빙기 구매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같은 소식이 소비자 사이에서 퍼지면서, 해당 브랜드 본사는 이미지 훼손은 물론 이를 수습하는데 상당히 곤욕을 치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식약처 인증을 받은 정상 제품만 오픈마켓 등을 통해 판매 중이지만, 일부 댓글이나 후기에서는 여전히 신뢰도 하락, 환불 요청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무신고 제빙기를 납품받은 커피숍,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등도 피해자다. 해당 커피숍 중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제빙기는 물론 사람들 입에 닿는 기기를 판매하려면 식품 안전 검사는 기본인데, 그걸 안 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순차적으로 다른 업체의 제품으로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제빙기 공식 수입 업자는 "실제로 주변에선 '수입 제빙기는 식검이 필요 없다'는 게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했다"며 지적했다. 그는 "식약처와 관세청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협력은커녕 정보 공유조차 안되고 않으니, 업자들은 걸리더라도 몰랐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라면서 허술한 절차를 꼬집었다.
◇ 제빙기서 발암 물질 검출되기도, 가장 피해는 소비자 "통관 법령·시스템 개선 시급"
결국 피해는 소비자 몫이다. 국가마다 제빙기 등 식품 기기에서 검출될 수 있는 중금속 허용 기준치, 유해성 판단 정도가 다른 데다, 해외 수입 기구들이 어디서 어떻게 유통됐는지 국내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지난 2009년 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수입되는 어린이 식기 세트, 주전자, 제빙기, 과도 등 식품 용기에서 발암물질이 다량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검출된 포름알데히드, 납, 크롬 등 가운데 일부는 기준치의 무려 470배나 검출됐다.
당시 검출된 발암물질은 혈관계 질환, 근육통을 유발할 수 있는 니켈이 106건으로 가장 많고, 크롬 73건, 납 31건 등 순으로 조사됐다. 수입된 중국산 '어린이 식기 선물세트'는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4ppm 이하) 보다 무려 4.75배 많은 19.0ppm이 검출됐다. 중국산 '제빙기'는 납이 기준치의 471배인 188.6ppm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식품 안전성과 신뢰 확보가 최우선인 식약처 및 관세청에 걸맞지 않은 세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식품의 유해성뿐만 아니라 각종 수입 식품용 조리기구에서도 유해중금속 검출이 심각한 수준으로 안다"면서 "해외 직구 불법 판매나 병행 수입 품목이나 수량이 이때보다 훨씬 늘어났지만, 식약처나 관세청은 서로 팔짱만 낀 채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방치하고 오히려 불법 행위의 여지를 주고 있다"며 지적했다.
결국 이같은 논란 끝에, 최근 제빙기 등 수입 식품 기기 관련 산자부 통합공고에는 "식품 안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는 식약처 고시가 아니여서 그간 하지 않았던 것일뿐, 이번 일을 계기로 포함했다"면서 "앞으로도 양 기관 간 긴밀한 상호협력을 통해 무신고로 식품용 기구가 수입되는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무신고 기구 관련 정보 신속 공유하고 특별 및 정기 합동 단속을 주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