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법정B컷]사법농단 외풍 넘어 인정된 '위안부 피해' 재판권



법조

    [법정B컷]사법농단 외풍 넘어 인정된 '위안부 피해' 재판권

    '위안부 손배'서 日 상대 재판권 인정 판결
    재판부 "주권면제, 배상 회피할 기회 주기 위함 아냐"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21.1.8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선고
    재판장 "피고(일본국)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이며 국제 강행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부분까지 국가면제가 적용할 수 없고 이 사건에서 우리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의 불법행위가 모두 인정되고 불법행위로 인해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피고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위자료는 적어도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합니다. 주문. 피고는 원고들에게 1억원 씩 지급한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정의기억연대가 1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8차 세계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재판장이 주문 낭독으로 5분가량의 선고를 마치자 피해 할머니들 대신 출석한 소송대리인은 재판석를 향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우리나라 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된 순간입니다. 이 법원에 정식 재판이 접수된 지 약 5년, 민사조정 신청에 나선 것을 기준으로는 7년하고도 5개월만입니다.

    소송이 이렇게 길어진 데는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소송 자체를 무효라며 거부한 탓이 컸습니다. 2013년 8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각 1억원씩 배상을 요구하며 조정신청을 냈지만 일본 정부는 재판부가 보내온 서류들을 반송하며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의미없이 지났고 그 사이 소송을 시작한 고(故) 배춘희 할머니와 김외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피해자 측은 결국 정식 재판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며 2016년 1월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도 일본은 재판부의 요청을 일제히 거부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일본은 그러면 무슨 근거로 재판을 거부하고 나선 걸까요? 바로 '주권면제' 입니다. 이는 '모든 주권국가가 평등하다는 전제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자국의 국내법을 적용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뜻의 국제관습법인데요. 이 원칙에 따라 '위안부' 피해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법원이 주권국가인 일본을 대상으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었습니다.

    또한,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들어 모든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도 내세웠습니다. 쉽게 말해 일제강점기 당시 입은 피해에 대해 개인이 일본 정부에 배상책임을 더는 요구할 수 없다고 한 것인데요. 이에 더해 이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 당시 체결된 '위안부 합의'도 일본 측으로서는 재판 거부의 명분을 더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정리하면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할 권리가 인정 안 되고 위같은 합의들로 개인이 재판을 청구할 권리 또한, 소멸됐다는 게 이 소송에 대해 가져온 일본의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만 이같은 시각으로 '위안부' 손해배상 사건을 바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사실 中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하여 '재판권 없음을 이유로 소 각하', '재판권 인정, 통치행위론에 의해 소 각하', '재판권 인정, 시효소멸 이유로 원고 청구 기각', '재판권 인정, 최근 위안부 협상에 의해 개인청구권 소멸되었음을 이유로 기각', '재판권 인정, 원고 청구 인용' 등 5가지 시나리오로 검토…(중략)…'법리상 재판권 인정될 여지는 적으나 재판권 인정할 경우에도 한국 정부의 대외적 신인도, 외교적 마찰, 경제적 파장 등을 고려하면 소멸시효, 일괄보상협정 등에 의해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였다고 판시함이 상당'하다고 기재


    공소사실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 소송의 승소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이 재판의 진행 절차 및 결론에 대해 검토할 것을 하급자에게 지시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당시 '위안부 합의'로 순항하던 정부의 한일 외교 관계가 이 사건 결과 따라 악화될 가능성을 염려해 피해자 측의 주장을 기각할 각종 논리 대응을 만들었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이 지시에 따라 작성된 검토보고서에는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해 진행될 수 있는 5가지의 가상 시나리오가 담겼는데 대부분은 임 전 차장의 의중대로 부정적인 결론, 그니까 소송 자체가 인정이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피해자들의 패소가 예상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권면제 등을 이유로 '소 각하 판결' 즉 재판권이 인정 안 된다거나 인정되더라도 최근 위안부 협상에 따라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이유를 들어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 등입니다.

    특히 시나리오마다 예상되는 파급 효과도 포함됐는데 여기서 이 소송의 부정적인 결론을 이미 예상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키우는 대목들도 대거 등장합니다. "법리상 재판권 인정될 여지는 적지만 재판권 인정할 경우에도 한국 정부의 대외적 신인도, 외교적 마찰 등을 고려하면 일괄보상협정 등에 의해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였다고 판시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언급한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이같은 법원행정처의 검토 내용이 실제 담당 재판부의 소송 진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법원행정처가 피해자들의 청구를 배척할 논리를 미리 마련했거나, 최소 이미 부정적인 결론을 예상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소송을 청구한 피해자들 마주한 장벽이 얼마나 높았는지는 가늠할 수 있을 듯 합니다.

    2021.1.8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설명 中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하였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 즉,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 대하여 인도에 반하는 중범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여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법질서 전체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돌아가서 이날 판결의 의의는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일본을 상대로 재판할 권리가 우리나라 법원에 있다고 결론내린 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 강행규범을 어긴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서 국제관습법인 주권면제 원칙보다 우선하는 건 헌법에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라고 본 것입니다.

    특히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낸 민사소송이 다른 배상 및 사과의 길이 막힌 상황에서 낸 최종적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관습적으로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재판권이 없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주권면제는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가 아닌 점을 인정하며 이 사건에서는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가진다고 판결했습니다. 아울러 1965년과 2015년의 합의로 이 손해배상사건에 대한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한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일본 측이 그간 재판을 거부해온 사유에 대한 반박이면서 당시 법원행정처가 검토한 방안과는 정반대 결론이기도 합니다. "재판권 없음을 이유로 소 각하 판결 불가피", "재판권 인정할 경우에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였다고 판시함이 상당함"이라는 당시 검토보고서의 가능성과 달리 재판부는 이 소송에서의 재판권도 청구권도 모두 인정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외교 현안 대응에 발맞춘다는 이유로 양승태 사법부가 검토했던 시나리오들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결론입니다.

    이날 선고 결과에 대해 "위안부 피해에 대해 일본 배상 책임을 입증한 역사적 판결"이라는 환영과 동시에 주권면제에 대한 판단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함께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다른 주권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을 모두 우리나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차분히 살펴봐야 할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역사에 대해 "재판할 권리가 없다"거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너무 손쉽게 결론 낸 이들은 이날 판결의 의미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이 위법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1심 재판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