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규모 '촛불시위'를 촉발한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 20년형을 확정 받았다. '비선실세'로 불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지난해 징역 18년형이 확정되는 등 주범들이 줄줄이 중한 실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가운데 오는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도 예정돼 있어 눈길이 쏠린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해 7월 파기환송심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15년과 벌금 180억 원, 국고손실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추징금 35억 원도 부과했다. 최씨에 대해서는 지난해 6월 징역 18년과 벌금 200억 원, 추징금 63억 3676만 원이 확정됐고, 현재 두 사람 모두 수감 중이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공모관계로 보고,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기업들에게 여러 방식으로 뇌물을 받아낸 점을 인정했다. 대통령 권한을 배경삼아 대기업들에 해당 재단에 대한 출연을 요구하고 최씨가 설립·운영에 관여했거나 친분이 있는 회사 등에 광고발주, 금전지원, 계약체결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좌측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최서원)씨. 이한형 기자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명시한 이들의 뇌물수수 금액은 150억 원이 훌쩍 넘는데, 특히 삼성그룹이 86억 원, 롯데그룹이 70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성과 롯데가 각각 기업 합병(삼성물산-제일모직)이나 면세점 특허 취득이라는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의 도움을 얻기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봤다.
국정농단 뇌물사건과 관련해 현재 남은 재판은 뇌물 제공자(공여자) 측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물론이고 이를 이어 받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최종 판결에서도 '삼성그룹의 86억 원 상당 뇌물'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에, 현재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는 양형만이 쟁점이다.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만큼 오는 18일 파기환송심 선고가 이 부회장의 최종 형량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과 특검 모두 '실형 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종민 기자
현행법상 뇌물공여자에 대한 처벌은 뇌물을 받은 쪽보다 가볍다. 이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 상당의 뇌물을 제공하고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 부회장의 경우는 신 회장과 달리 최씨 측에 제공한 뇌물액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횡령 혐의로도 걸려있는 상황이다. 신 회장의 경우 면세점 특허 취득이라는 그룹 차원의 현안이었던 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라는 개인적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대법원이 인정한 상황이다.
횡령 액수가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압력 등에 의해 소극적으로 범행하게 된 경우라면 양형기준상 특별감경요인이 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적극적·능동적 뇌물 공여'라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가 '회복적 사법'에 관심을 쏟으며 총수 불법행위 재발방지를 위한 그룹 차원의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와 실효적 운영을 강조한 상황이다. 재판부가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 운영 상황을 법정형을 반토막 내는 '작량감경'이 용인되는 수준의 중대한 양형요인으로 판단할지 주목된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한편 박 전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이날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남재준), 징역 2년 6개월(이병호·이병기)의 실형이 선고됐다. 해당 특활비를 대통령에게 전달한 일명 '문고리 권력'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서도 앞서 실형이 확정된 바 있다.
오는 28일에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2심 판결 나올 예정이다. 우 전 수석은 1심에서 국정농단 묵인·방조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국정원을 동원한 불법사찰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로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