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황진환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문자 내용이 14일 서울시 공무원 성폭행 사건 선고 과정에서 언급되며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해당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일부 의혹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박 전 시장 재직 당시 비서실 직원이었던 정모씨의 성폭행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1부(조성필 부장판사)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정씨는 4·15 총선 전날인 4월 14일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동료 여직원(피해자)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 측은 이같은 피해로 6개월에 걸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정신적 피해(상해)를 입었다고도 주장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와 동일인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재판에서 정씨 측은 피해자가 6개월에 걸쳐 겪은 PTSD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형량 감경을 시도했다. 이에 대한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서 재판부는 해당 사건이 아닌 박 전 시장 의혹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판단해야 했다.
실제로 이날 박 전 시장의 이름은 재판부의 정씨 측 주장에 대한 판단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2020년 5월경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고 이후 11월경까지 계속 치료를 받았다"며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 사실은 2020년 5월 15일경부터 진술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자체는 표면적으로는 피해자가 PTSD를 겪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박 전 시장이 아닌 정씨의 범행이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어느정도 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판단이기도 해 관심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당시 병원으로부터 제출된 진단서 및 피해자의 상담 중 진술내용 일부를 언급했다.
이 진술내용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박 전 시장으로부터 받았다는 문자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여러가지 취지로 진술했다"며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박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 반 이후부터 야한 문자나 속옷 차림 등 사진들을 보냈다는 이야기들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피해자가 박 전 시장으로부터 '몸매가 멋있다'거나 남녀 성관계 과정을 묘사하는 내용 등의 문자를 받았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이미 수차례 주장했지만 문자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러면서 "이런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원순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이 일로 바로 피해자가 PTSD를 겪게 된 것은 아니라며 최종적인 책임은 정씨에게 돌렸다.
재판부는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인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고 나아가 직장 동료인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다만 피고인이 성폭행 외 나머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점, 이 전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며 양형사유를 밝혔다.
이같은 판결에 대해 정의당은 논평을 통해 "재판부가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추행을 인정한 것이다"며 "조만간 발표될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 역시 피해자를 향한 응답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해 7월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됐지만 당사자의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는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