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피고인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를 모텔로 함께 옮긴 사람들 모두 처벌받길 원합니다. 그렇게라도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26일 오전 부산지법 301호 법정. 형사6부 최진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부산 모텔 방치 사망 사건 첫 공판에서 증언대에 선 피해자의 어머니는 재판부에 눈물로 엄벌을 요청했다.
발언에 앞서 이날 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고인 A(23)씨는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11시 30분쯤 함께 술을 마시던 B(22)씨에게 상해를 입혀 끝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직장 동료인 B씨 등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B씨를 술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후 A씨는 발로 B씨의 몸을 걷어찬 뒤 멱살을 잡아 뒤로 넘어뜨려 후두부 골절상을 입혔고, 같은 달 15일 오전 2시쯤 인근 호텔에서 B씨가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에 앞서 유족 측은 검찰이 제시한 이 공소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유족은 "공소장에 '피해자가 술에 취해 행동을 과격하게 하자', '피해자가 욕설을 한다는 이유로 화가 나' 등 내용이 포함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당시 술집 종업원과 목격자들은 언성이 높아진 사실이 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진술했고, 피해자는 평소 욕설이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지인들이 꾸준히 이야기했는데 검찰이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피고인이 일행들과 함께 모텔에 옮겨 방치해 사망하게 했다는 과정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 모텔 방치 사망사건. 김봉근 기자
이날 법정에서도 유족 측은 의식을 잃은 B씨를 모텔로 함께 옮긴 일행 4명도 공범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이들은 현재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B씨 어머니는 "폐쇄회로(CC)TV를 보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이를 두고 일행들이 15분 이상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그중 한 명이 모텔에서 결제를 하고 나머지 3명이 아이를 옮긴다"며 "그 사이 B의 여자친구가 전화를 걸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은 모텔 점원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내가 받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대신 받아달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후 이들은 모텔방에 B를 혼자 눕혀두고 0시 45분쯤 나왔는데, 이들은 장례식장에 찾아와 '부축하는데 B가 부주의로 넘어졌고, 폭행은 전혀 없었다'고 거짓말했다"며 "A뿐만 아니라 나머지 일행 4명 모두 함께 공범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 측은 "당시 일행이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수사 중이라는 내용을 오늘 처음 전해 들었다"며 "A씨 과실치사 건과 일행의 과실치사 건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수사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 재판부에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제출된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하겠으며, 특히 A씨가 B씨를 가격한 이후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는지는 중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A씨 변호인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면서, A씨 가족이 유족 측을 만나 사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 부모는 어떠한 질타라도 그대로 받고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연락처를 받지 못해 아직 사죄드리지 못했다"며 "금전적 위로 등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하니, 유족을 만날 수 있도록 재판부가 유족에 말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B씨 어머니는 "장례식장에 몇 번이나 찾아와서 사죄할 기회가 있었지만 오지 않았고,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경찰 조사, 영장실질심사와 재판을 앞둔 시점에만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며 "이는 형량을 줄이려는 쇼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이날 A씨 가족은 법정을 나서는 B씨 유족에게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용서를 받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