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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왜 '원전 파일'을 황급히 지워야 했을까

기자수첩

    [뒤끝작렬]왜 '원전 파일'을 황급히 지워야 했을까

    北 '원전 지원' 의혹이 불러낸 네오콘의 악몽…경수로 사업 좌절의 교훈
    작은 오해 빌미로 북핵 해결 물거품…원전 논란 속 美강경파 득세 경계해야

    연합뉴스

     

    제1야당이 '원전 게이트'로 명명한 사건의 전모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몰래 관련 파일을 삭제한 이유를 빼고는 대체로 해명되는 분위기다.

    정부와 청와대는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일단, 정부가 설령 원전 지원을 검토한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일부 야당 인사의 주장처럼 북한 비핵화와 상관없이 원전을 '상납'하려 했다면 말 그대로 '이적행위'가 된다.

    하지만 노트북 하나도 반입할 수 없는 촘촘한 대북제재를 피해가며 원전을 지어준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봐도 현실성이 없다.

    그렇다면 산업부 공무원들은 도대체 왜 한밤중에 사무실에 들어가 황급히 원전 파일을 지웠을까?

    정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 했지만 최근 며칠 요란한 소동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북한 경수로 공사 현장.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2006년 6월 공식 중단된 북한 경수로 사업의 뼈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경수로 사업은 1차 북핵 위기에 따른 북미 제네바 합의(1994년)로 시작돼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더니 2차 북핵 위기(2002년)를 맞아 좌초했다.

    발단은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해 농축우라늄 개발 계획을 추궁한 것이었다. 이에 발끈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우리는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애매한 말로 사태를 키웠다.

    미국은 이를 북한이 핵 개발을 실토한 것이라 단정해 중유 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이듬해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강대강으로 맞섰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1996년)이나 IMF 외환위기(1997년) 때도 지켜졌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10여년을 이어져온 대역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한 2003년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로써 북핵문제의 조기 해결은 좌절됐고 북미 간 불신은 더욱 커진 채 오늘에 이르게 됐다. 경수로 사업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남북·북미관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통한의 역사의 이면에는 북한 탓도 있지만 미국 초강경 매파 '네오콘'의 득세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당시 부시 대통령을 등에 업은 네오콘은 행동대장 격인 존 볼턴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그랬듯 전임 클린턴 정부의 대외정책을 뒤집고 훼방했다.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이다.

    그런 점에서 경수로 사업의 실패를 특별한 경각심을 갖고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살얼음판 같은 한반도 안보 지형은 여전히 취약하고 오히려 악화된 측면이 있다.

    더구나 원전은 그 자체로 엄청난 휘발성을 가진 민감한 사안이다. 어떤 식으로든 공개될 경우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다 해도 산업부 공무원들의 처신은 잘못됐다. 다만 그들이 느꼈을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음이 분명하다. 현직 대통령도 이적행위자로 몰리는 나라 아닌가?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대 기로를 맞고 있다. 지금의 논란이 자칫 '친북정권' 프레임으로 변질된다면 강경파 득세의 명분이 되고 정세가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어느 때보다 신중한 언행이 요구되는 그야 말로 엄중한 시점이다.

    작은 오해나 실수조차 북핵 해결의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는 천추의 한으로 남고 역사의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 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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