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7일 손녀 피너건양과 함께 판문점 인근 올렛초소(GP)를 방문해 쌍안경으로 북측 지역을 바라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당시 부통령). 연합뉴스
4년 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막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외정책 1호 과제로 북핵문제를 넘겼다.
오바마는 8년 간의 임기 내내 북한의 각종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취임 4개월 만에 터진 2차 북핵실험 등으로 북한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제재와 인내 외에는 별다른 대응방안을 강구하지 못한 전임자로서 자신의 대북 트라우마를 후임자게 고스란히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으로서 '주군' 오바마의 대북 무력감을 8년 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바이든은 취임 이후 50여개 가까운 행정명령을 쏟아내는 등 속도감 있게 국정을 운영해가면서도 아직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ㅂ'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국무부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국무부를 찾아 자신의 대외정책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중국, 러시아, 예멘(이란), 미얀마 등 여러 대외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끝내 북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뿐 만이 아니다.
그의 안보 분야 참모진들의 언급도 매우 절제돼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을 앞두고 열린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브리핑도 그랬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 외교를 계속할 의향이 있느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것이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아주 방어적인 답변을 내놓는데 그쳤다.
그는 "이미 말한 대로 대북 정책에 대해 살펴 보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어젯밤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검토가 진행 중이며,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동맹, 특히 한국, 일본과 긴밀히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앞서지 않으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그것을 앞서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입만 보라는 뜻으로 들린다.
백악관 젠 사키 대변인. 연합뉴스
백악관 젠 사키 대변인도 마찬가지다.
매일 여는 백악관 현안 브리핑에서 그는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원고없이 즉석에서 답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북한 관련 질문만은 예외였다.
그는 미리 '준비한' '원론적인' 답변을 '읽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답변은 "북한 문제는 여전히 중대한 관심사다"는 것이었다.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북한문제에 대해 몇 차례 질문을 받은 자리에서 "살펴 보고 있다"는 원론적 대답에만 머물고 있다.
이 같은 바이든팀의 절제된 대북 메시지에 대해서는 '무언'의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와 달리 미국의 권력 교체기에 도발을 삼가고 있는 북한을 고려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예멘 전쟁 지원 중단을 선언한 것도 결국은 이란핵 문제를 고려한 조치라는 분석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역사적으로 그 주적인 미국의 신임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서 다양한 형태로 자극해왔다.
연합뉴스
따라서 바이든팀의 이러한 대북 행보는 본격적인 대북 외교를 앞두고 상대국을 불필요하게 긁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으로서는 그 동안 8차 당대회 등을 통해 원론적으로나마 대미 제스처를 공개적으로 취했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철회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북미간 소강상태는 머지않아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월로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이 갈림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대북 '도발'로 간주한다.
그 때문에 그 '도발'의 강도나 규모 등에서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북한에게 '역도발'의 명분을 제공할 개연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