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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무실과 교장실 등 교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을 학생들에게 청소하도록 시키는 것은 '인격권 침해'라는 판단이 나왔다. 학교 측은 이를 '인성교육'이라고 반박했지만, 자발적이 아닌 청소 강요는 인성교육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8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따르면 ㄱ중학교 3학년인 A학생은 지난해 "중학교에 입학한 후 현재까지 교무실 등 교직원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 학생들에게 청소하도록 하고 있다"며 "학교가 관행적으로 학생들에게 교직원 사용 공간을 청소하도록 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진정을 제기했다.
A학생은 "학교는 학생들에게 '1인 1역할'을 의무적으로 분담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역할 중에는 교무실 청소도 포함돼 있다. 청소 시간은 20~30분이 소요된다"며 "진정인을 비롯한 친구들은 교직원을 존경하나, 교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학생들에게 청소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ㄱ중학교 측은 "본교 환경교육부에서는 학생들의 '잠재적 교육'의 일환으로 청소를 포함한 연간 계획을 수립해 실시한다"며 "기본적인 교과 교육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교육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감안하여 학생들이 청소에 참여하도록 한다. 쾌적한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학급 및 학교의 모든 구역을 적절히 배분해 청소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성을 함양하는 차원에서 학교가 생긴 이래 실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활동과 마찬가지로 청소 또한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용역 활용을 통해 교직원 사용공간을 청소하도록 정부 방침 등이 있다면 용역을 활용하겠다"며 "그러나 용역 활용 방침이 있기 전에는 현재처럼 학생들에게 교무실 등 청소를 배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ㄱ중학교를 관할하는 교육청 또한 "학교는 구성원인 학생과 교직원이 공동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라며 "교사는 청소 지도를 하며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성장 및 심리적 상태를 살피고, 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청소 시간에 교사와 소통하며 성장해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장실, 교무실 등의 청소를 의사에 반해 학생들에게만 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사항이 아니다"며 "청소 용역 이용, 희망 학생들에 의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의 시행 등 방법으로 깨끗한 학교 환경을 만들어 가도록 권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학생들의 교무실, 교장실 등에 대한 청소 활동은 '인성교육'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인권위는 "ㄱ중학교는 인성교육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나 인성교육이 강요나 복종을 요구하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만약 강요나 복종을 요구하는 학교 교육이라면 이는 학생들이 '비인간적인 심성'을 배우게 될 수도 있다"며 "다수 학생이 교육적 활동이라고 충분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청소를 지시하는 것은 인성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청소년기의 학교생활은 삶의 경험과 의식 형성에 매우 중요한 환경"이라며 "그런데 합리적인 설득과 이해가 결여된 교육활동이라면, 학생이 권리행사의 주체로서 민주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했다고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청소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실의 청소나 과학실, 음악실 미술실 등의 사용 후 뒷정리를 하도록 교육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라며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 외의 다른 공간의 청소를 배정할 경우 학생들의 '자발적인 신청'에 의해 하도록 하고, 이를 교내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하는 방법 등으로 하는 것이 보다 교육적 측면에서 적절하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인권위는 학교 측의 '잠재적 교육의 일환'이라는 해명에 대해서도 전문가 의견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구정화 교수는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의 문화와 교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학습하는 경우"라며 "ㄱ중학교가 제시한 자료에서 교직원 사용공간에 대한 학생의 청소 행위는 인성교육을 의도한 것이기에 잠재적 교육과정이 아닌 '의도된 교육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학교 주장대로 청소활동이 잠재적 교육과정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학생들은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고 그 활동을 시킨 것에 대하여 '복종을 강조하는 학교 문화'라는 비판적 의식을 배운 것이 된다"며 "이는 학생들의 진정이라는 행위 자체에 이미 나타나 있다"고 덧붙였다.
청소 강요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은옥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ㄱ중학교는 법령 및 학칙에 근거를 두지 않고 학생들의 기본권을 제한 혹은 침해하는 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학칙에 위와 같은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법령의 범위 내에서 학칙으로 정해야 한다는 한계를 이미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인권위에 회신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황진환 기자
인권위는 ㄱ중학교 교장에게 교직원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을 학생들에게 청소하도록 비자발적 방법으로 배정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또 ㄱ중학교 관할 교육감에게 해당 사례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일부 학교에서도 관행적으로 학생들에게 교무실 등을 청소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인성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거나 크게 문제 삼지 않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라며 "그동안의 관행을 돌아보며 학생들이 인성교육과 인권에 관련된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인권 친화적인 학교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ㄱ중학교 관할 교육청 소속 중학교들의 '교직원 사용 공간에 대한 학생대상 청소 배정 현황'에 따르면 무작위로 선정된 학교 25곳 중 20곳이 학생들을 교무실 청소에 배정하고 있었다. 교장실은 15곳이, 행정실은 16곳이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있었다.
인권위가 각 학교에 사유를 묻자 "학생들의 봉사 정신 함양을 위함", "학생 희망(학생들이 교무실 청소를 즐거워함) 및 소통의 장소",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행", "교무실은 교사들만의 사적 자유공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생들이 수시로 들어와 생활지도 받는 곳으로 교사와 학생의 활동이 공유되는 공간이므로 함께 청소가 가능하다고 생각함" 등의 답변이 왔다.
일부는 "학생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만 스스로 청소해야 한다면 외부 인력을 이용하여 굳이 화장실 청소를 해 줄 필요도 없다", "내가 사용한 공간만 청소해야 하고 선생님들이 사용한 공간이니까 사용한 사람이 청소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경(敬)' 사상을 해치고 있다" 등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