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이한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법안 발의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속도조절에 들어간 분위기다. 발의 시점이 오는 4월 재·보궐선거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과 청와대는 수사청 신설에 대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공개 반발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하면서도, 이른바 '추·윤 갈등' 이후 검찰과의 대립이 다시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여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당청의 차분한 대응…'선거 전' 의식한 듯
윤석열 검찰총장. 황진환 기자
윤 총장은 2일 보도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민주당의 수사청 입법 강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해 사실상 대국민 메시지도 담긴 인터뷰였다.
민주당은 일단 차분하게 대응했다. 신영대 대변인은 "임기를 4개월 남겨둔 검찰총장의 말씀이고, 국회의 역할은 충실히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서 검찰 구성원이 가진 불만을 말했으니, 국회도 검찰개혁을 위한 국회의 입법 역할을 다 하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당청은 대신 윤 총장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당에서 통일된 법안이 나온 것도 아닌데, 윤 총장이 향후 있을 당정 협의회나 공청회도 아닌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불만을 표출한 건 절차적으로 옳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4차 회의. 윤창원 기자
그러자 당 검찰개혁특위 내부에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3월로 예정했던 법안 발의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위 소속 한 의원은 통화에서 "당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어 소통이 더 필요하고, 선거도 앞두고 있으니 사회적·정무적 갈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한다"고 말했다. 법안 발의가 오는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선거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실제 당청은 지난해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으로 국정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선거를 앞두고 검찰과 갈등을 빚는 모양새가 국민에게 피로감을 준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 논란이 '선거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장한 강경파를 향한 경고였다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 특위는 오는 4일 전체회의를 열어 수사청 설치에 대한 검찰의 공개적 반발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검찰개혁 특위가 모레(4일)쯤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라며 "그때 논의해서 좋은 결론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내선 윤 총장 '정치행위' 지적도
이한형 기자
윤 총장의 작심발언이 결과적으로 '검찰개혁 시즌2'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지만, 민주당은 상반기 내 입법은 마치겠다는 방침이다. 현 정부 임기 내에 개혁을 완수하려면 대권 국면에 접어드는 하반기 전에 일을 끝내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당내에선 향후 윤 총장의 행보를 주시하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당에서 공청회도 할 텐데 검찰은 그때 의견을 제출하면 될 것 아니냐"며 "윤 총장이 저런 식으로 하는 건 완전히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총장은 수사청 신설에 대한 일선 검찰청의 의견도 취합해 조만간 입장을 내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