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해 4월 싱가포르 내 외국인 노동자 집단감염 사태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를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확산되고 있습니다...(중략)...불안한 신분 때문에 의심증상이 있어도 선별진료소를 찾지 않을 개연성이 높아 언제든지 지역감염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코로나19 범부처 대책을 지휘하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말한게 아니다. 지난해 4월 싱가포르 내 외국인 노동자 집단감염 사태를 두고 한 말이다. 당시 정부는 싱가포르 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를 '코로나 방역의 사각지대'로 보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 남양주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100여명이 집단발병했고, 코로나 청정지역을 표방해왔던 여주시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10명이 확진자로 판명됐다.
이어 양주시와 이천시, 연천군 관내 공장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10여명씩 집단감염됐고, 급기야 이달 들어서는 동두천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100명이 다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특히 동두천시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연천과 부천 등 타 지역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언어 소통 문제로 역학 조사에 애를 먹고 있어 타 지역으로의 전파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동두천시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 관계자는 "확진자가 대규모로 나오더라도 한 사업장이면 수습이 빨리 되는데 이번 경우는 연천과 양주, 부천 등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에 언어소통의 어려움과 미등록 외국인들도 있어 근무지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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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외국인 노동자가 코로나19 감염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은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있어왔다. 외국인 노동자들 대다수가 방역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면서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정 총리의 지난해 발언도 이같은 점을 반영한 발언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 노동자의 90% 정도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며 "한 방에 4명이 사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대구시 성서공단 이주노동자센터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들은 언제라도 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기숙사에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며 "보통 3~5명이 한 방에 살지만 주야간 교대 근무가 있는 공장은 그 두배의 인원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비좁은 기숙사는 감염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1인 1실 기숙사 배정'과 '침대 간 충분한 거리두기' 권고 지침을 내렸지만 중소기업으로서는 그야말로 현실성 없는 '권고'일 뿐이다.
동두천 공단 관계자는 "기숙사 대책 부분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며 "기존 기숙사를 확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대책"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숙사 건물이 비좁다 보니 화장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용공간에 대한 주기적인 소독도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추위를 막기 위해 창문 등을 비닐로 막는 경우도 있어 환기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외국인 노동자의 기숙사는 대부분이 열악하다는게 노동 관련 단체들의 얘기다.
또한 공장과 기숙사가 한 건물에 있는 등 분리되지 않은 문제도 있다. 작업공간과 생활공간이 인접해 있다 보니 교차 감염의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양식장 등에서 사용할 부표를 정리하는 모습. 박요진 기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남양주 공장 외국인 근로자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자 '코로나19 사업장 대응지침'을 내렸다. 내용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 사이의 간격을 최소 1m 이상 띄우고 간격 조절이 어려울 경우 작업대 위치나 방향 등을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동두천 공단 관계자는 "공정 부분을 조정하기는 더욱 어렵다"며 "발열 체크나 외부인 통제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외의 것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말 종교 모임을 갖거나 출신 국가별 모임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업장 감염이 기숙사를 통해 지역 집단감염으로 번지기도 하고, 반대로 지역 감염이 작업장 감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동두천 집단감염의 경우 후자가 우려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단감염에 취약한 또다른 이유는 검사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검사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추방당할 것을 우려하고 일부 사업주도 이들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처벌을 받을까봐 검사를 기피한다. 검사 결과 확진자라도 나오면 상황은 더욱 심란해진다. 사업장은 폐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확진된 미등록 노동자는 당국의 주목에 추방의 두려움을 더욱 느끼게 된다.
동두천 공단 관계자는 "업체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확진자 발생 여부"라며 "확진자가 나와 빠져 버리면 조업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두천시 관계자도 "확진자가 나오면 기업을 폐쇄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처음에는 검사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금은 상황이 심각해지니 검사에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검사와 관련해 불법체류 여부를 묻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자 지난 주 법무부 차관까지 동두천 현장을 찾아 '불법체류자 고용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업주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우다야 이주노조 위원장은 그러나 "미등록 노동자는 합법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불이익을 당할까봐 검사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인력사무소 앞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 유선희 기자
국내에 체류하는 미등록 외국인은 지난해 현재 39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 거주 외국인의 19%를 차지하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정부의 한발 느린 대처도 이번 외국인 노동자 집단감염을 키웠다. 지난해 4월 당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인 등이 코로나19 방역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외국인 노동자를 테마로 한 선제적 방역 조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올들어 남양주와 동두천 등에서 100명이 넘는 집단감염이 잇따라 터지고 나서야 정부는 전국 1만 1천여개 외국인 노동자 고용 사업체에 대한 특별점검을 3월 한달간 벌이기로 했다. 구치소, 교도소 수용자들이 '3밀(밀접,밀집,밀폐)의 사각지대'인 것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아무런 검사 없이 수용했다가 1천명이 넘는 확진자를 낸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도 뒷북 대처의 결과였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구치소 수용자나 군대 수준의 접촉 밀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집단 내로 환자가 유입되는 것을 막고 의심자가 발생했을 경우 조치가 빨리 이뤄져 내부 전파를 방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관리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관이 아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요양병원처럼 주기적 반복적인 검사를 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