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G공유대학 홈페이지 캡처
지역 대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동남권에서만 매년 2만 명 이상 정원이 미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학이 없으면 지역이 제대로 혁신하기 어렵고, 발전도 불가능하다.
경상남도가 인재 역외 유출로 지역 위기가 가중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인재양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자체와 대학, 기업, 혁신기관이 똘똘 뭉쳐 하나의 '지역혁신 플랫폼'을 만들었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이 인재들이 지역에 남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이 역사적 실험의 중심에 경남형 공유대학 'USG(University System of Gyoengnam)'가 있다. 한마디로 위기에 처한 지역 대학의 구원 투수 역할을 맡았다.
최근 USG 학사 과정 1차 모집이 마감됐다. 스마트 기계설계해석(34명), E-mobility(33명), 지능로봇(33명), 스마트 제조ICT(100명), 스마트도시·건설(50명), 공동체 혁신(50명) 등 300명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만든다.
USG에 첫발을 내디딘 대학생들을 만나 '꿈'을 들어봤다.
싸움로봇. 창원대 이정민 학생 제공
◇ "여자가 무슨 로봇이냐고요? 내가 만든 로봇 세상에 내놓겠습니다"이정민(21)씨는 창원대학교 기계공학부 3학년 재학 중 이번에 처음 모집한 USG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 씨의 지원 이유는 흥미를 느끼는 전공 분야를 살려 민간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다. USG에서는 좀 더 깊게 전공을 공부할 수 있고 지역의 유수 대기업에 인턴십 기회도 제공한다고 하니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씨는 "동아리에서 우연히 로봇을 만들면서 기계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됐다"며 "좀 더 기계를 잘 다루고 싶어서 관심 분야에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의 흥미는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전국대학생 자율로봇경진대회'에 창원대 팀원으로 참가해 우수한 성적으로 경남도지사 상을 받았다.
그는 보수적인 창원에서 나고 자라며 '여자가 무슨 로봇이냐, 인형이나 갖고 놀지'라는 편견에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이 씨는 당당히 실력으로 입증해보이겠다며 고향 창원에 있는 LG전자에 입사해 오랫동안 살고 싶어한다. 이 씨는 USG에서 배운 기계와 로봇 등을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다. 이 씨는 "USG에서 잘 배운 뒤 LG전자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 취업 때문에 '인서울' 선택한 친구들…"지방 위기 문제 내가 해결한다"경상국립대학교 배환희(21)씨는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진주 토박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진주에 사는 게 좋았다. 그래서 대학도 진주에 있는 곳으로 택했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인서울'을 선택했다. 그래야 취업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이유였다.
콘텐츠 제작 중인 사진. 배환희 학생 제공
배 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모전이나 인턴 등의 기회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한 기업에 쏠려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했다"며 "이런 수도권 중심주의와 지방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USG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USG에서는 스마트기계설계해석, E-Mobility, 지능로봇, 스마트제조 ICT, 스마트도시·건설, 공동체혁신 등 6개 전공이 마련돼있는데, 배 씨는 이 중 유일하게 인문사회 전공을 다루는 공동체혁신 전공에 지원·합격했다.
배 씨는 더이상 같이 나고 자란 고향 친구들이 '꿈'도 아닌 단순히 취업을 위해 '인서울'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이런 수도권 일극 문제와 지역 사회 문제 등을 발굴하고 데이터로 분석한 뒤 해결하고자 한다. 배 씨는 "지역 현안과 대학 생활 등을 과 동아리에서 유튜브로 찍었던 경험에다 USG에서 배우는 사회 통계를 접목시켜 지역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 "공무원만이 답이 아니더라…USG면 어디든 취업 자신"구동은(24)씨는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에 다니는 3학년 학생이다. 처음에 공무원만 생각하고 입학했는데 군 제대 후 여러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2018년 군대를 전역 한 뒤 수개월 간 쇼핑몰 알바로 번 돈으로 필리핀 어학연수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또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이곳을 지원했다는 게 구 씨다.
구 씨는 "USG에 다니면 공무원 세상이 아닌 공기업과 민간기업 등 다양한 곳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홀로 좁다란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할 공무원 수험 생활보다는 그 시간에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게 더 가치 있어보인다는 게 구 씨의 생각이다.
더구나 USG에서는 학생 개인당 연간 서울대 수준의 4천만 원 상당의 교육비를 투입한다고 하니 자기 발전에도 큰 이득이 될 거라는 기대도 있다. 구 씨는 "졸업장에 USG 출신이면 가산점도 될 수 있고 여러모로 이득이라 생각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인제대 구동은 학생 제공
◇ "소방관만 불끄나?"…소방 방재 전문가 꿈 키운다
이주하(21)씨는 경남대 소방방재공학과 3학년 학생이다. 그는 소방관이 되고 싶어 해당 과로 진학했지만 현재는 직업 선택의 폭을 좀 더 넓히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USG에 지원했다.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는 건 국가공무원인 소방관만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씨는 "LH나 카이 등 공기업에서도 방재 역할을 하는 부서 쪽에 지원할 수 있으니 그곳도 생각하고 있다"며 "취업할 때 자격증이 나오고 학생들을 위해 토익, 빅데이터 자격 기회도 준다고 하니까 여러 고민 끝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USG가 기업과 연계된 곳이 적어 보인다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울산과 부산지역 기업과도 연계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 씨는 "지금은 전공하고만 채용이 연계돼 경험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기업이 적어 보인다"며 "USG가 울산과 부산까지 연계되면 취업 기회가 더 넓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USG에 들어온 대학생들의 포부는 대단하다. 지역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 USG는 도내 17개 대학이 연합해 공통 교양과정과 전공 심화과정을 운영하고, 이런 융복합 과정을 이수하면 소속 대학과 USG 학위를 동시에 받는다.
USG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도 서울대 수준인 약 4400만 원 수준으로 끌어올려 수도권 주요 대학에 견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와 NHN 등 주요 앵커·기술기업과 다양한 지역 혁신기관 등 수십 곳이 참여한다.
USG 관계자는 "기술력을 갖춘 현장 맞춤형 고급인력을 양성해 지역 인재를 경남 기업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