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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강뷰 아니면 한강물'이란 말을 아세요?"
경기도 확대간부회의가 열린 지난 21일 오후 도청 상황실.
회의에 앞서 강연자로 초청된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장재열씨가 이재명 지사와 경기도 고위공직자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지금 청년들에겐 비트코인이 유일한 동아줄"참석자들은 질문에 귀를 쫑끗 세웠고 장 대표의 강연은 이어졌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우스갯소리입니다. 가상화폐 투자에 성공하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실패하면 한강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입니다"
취업기회가 없어 미래가 참담한 청년들이 그만큼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투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청년들에게 비트코인은 '내 삶을 바꿔줄 유일한 동아줄'이다.
장 대표는 "주변에 아는 청년 56명 중 절반이 넘는 31명이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던 2018년만 해도 주로 고소득 청년들이 '여윳돈'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최근 에는 가장 자산이 적은 청년들이 이른바 '몰빵'을 하고 있다. 당연히 가격이 급락할 경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청년들이 '미래를 매우 우울하게 전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상담건수 급감으로도 확인된다.
장 대표는 "연애·결혼에 대한 상담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틈 자신들의 인생에서 이를 아예 제쳐버리는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들의 좌절은 '위로'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불안'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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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청년들이 이처럼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위험천만한 투기판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근본원인을 '사회적 불안(Social Unrest)'이라고 진단했다. 요즘 청년들의 불안은 주거·일자리·고립·관계·안전망·젠더문제 등 사회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상담의 최대 무기인 '위로'와 '공감'도 청년들 앞에선 무기력하다.
결국 '정책'으로 청년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 삶을 바꾸는 것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정책이다'라는 점을 청년들이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특히 "복지적 관점으로 청년들을 바라볼 시점이 됐다"고 강조한다.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시행 중인 청년기본소득과 청년면접수당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는 "청년들이 먼저 정책의 수혜자로서 긍정적 경험을 충분히 쌓게 된다면, 이후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더 나아가 실질적인 청년정책 수립작업에도 적극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정책 참여와 관련해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죽이고 있는 평범한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내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청년정책 수립을 위해 청년 참여기구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많지만, 대부분 중복 참여자"라며 "특정 성향의 청년들이 모여 전체 청년을 대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아예 청년인 줄 모르는 청년, 정책과 정치가 동의어인 줄 아는 청년, 알바에 치여 의견조차 낼 수 없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역사 이래 처음 겪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현실 직시해야"
윤창원 기자
이날 20분짜리 미니 강연에 대한 공직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적적이었다. 이재강 평화부지사도 "청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최근 여러 강연 중 가장 인상 깊었다"고 평가했다.
김동환 도 청년정책관은 "청년들은 단순히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며 "자기 삶의 문제를 당당히 이야기하고 또 정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지 계속 고민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가 청년 5천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청년정책 공론화조사' 결과를 4월 말쯤 공개하고 새 정책을 발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지사는 장 대표의 강연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저성장시대를 맞아 작은 기회를 놓고 청년들 사이에서 격렬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경제활성화를 통한 지속적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기도가 역사 이래 처음 겪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그 대책을 과감하고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