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너의 정의는 무엇이냐."
지난 2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정의의 사람들'은 알베르 카뮈의 동명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극의 시간적 배경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이다. 자신의 정의에 따라 독재자 세르게이 대공을 암살한 사회주의 혁명가 '칼리아예프'는 독방에 갇한 뒤 다양한 환영을 접하고 '내가 지켜온 정의가 옳은가' 고뇌에 빠진다.
칼리아예프 앞에 나타난 환영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세르게이 대공 암살사건'을 함께 모의했던 동지부터 안중근·윤봉길 의사, 노동운동가 전태일, 태극기부대와 촛불시위대, 페미니스트, 최근 미얀마 시위대까지 각자의 정의를 외친 인물을 아우른다.
문삼화 연출은 지난 2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프레스콜 겸 기자간담회에서 "카뮈의 원작을 대폭적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이어 "칼리아예프가 살았던 시대의 정의가 거대담론적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세분화되고 개인화됐다. 절대불변의 진리같은 정의가 과연 이 시대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라며 "다른 사람의 정의에는 귀 닫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만 옳다고 여기는 세태를 풍자했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작가는 "'칼리아예프가 정의의 이름으로 벌이는 살인이 정당한가'에 대한 원작의 메시지는 가져가되 저마다 정의를 부르짖은 인물을 소환해 정의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태를 들여다봤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극단 제공
배선애 드라마투르그 역시 "원작에서는 정의를 살인 영역에 한정해 정의내리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2021년 대한민국 사회의 풍경과 결합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칼리아예프' 역의 김시유는 "(칼리아예프가) 등장인물 중 만나지 않은 인물이 없다. 다른 인물을 만날 때면 신념이 흔들리는데 그 중심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청년을 무대 위에 존재하게 해서 관객과 만나게끔 했다"고 했다.
'칼리아예프'와 대척점에 있는 '스쿠라토프'를 연기한 강신구는 "등장인물 모두 자신의 정의가 옳다고 주장한다. 저 또한 나만의 정의가 있다. 악역이니까 그 정의가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하고 연기한다"고 했다.
'정의의 사람들'은 지난해 6월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문삼화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신현종, 김재건, 김신기, 김강태, 구도균 등의 묵직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5월 9일까지.
서울시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