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함께 거주하던 친구를 가두고 가혹행위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초반 남성 2명이 피해자의 경찰 신고에 앙심을 품고 '보복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은 17일 "피의자 2명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등 수사절차가 진행되던 중 피의자들이 피해자가 고소한 것에 앙심을 품고 지난 3월 31일(혹은 30일) 지방에 있던 피해자를 서울로 데려와 강압상태 아래 두었다"며 "이후 수사기관에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요하는 등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피해자 A씨는 지난 13일 새벽 6시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소재 오피스텔에서 나체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안모(20)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와 해당 오피스텔에 함께 살고 있던 안씨와 김모(20)씨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 이들을 중감금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후 A씨가 심각한 영양실조에 34kg의 저체중 상태인 데다 몸에서 폭행 흔적까지 발견되면서 지난 14일 살인죄로 혐의를 변경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1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후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의 가족은 이미 지난해 11월 7일 안씨와 김씨를 상해죄 혐의로 대구 달성경찰서에 고소했다. 고소 당시 A씨는 안씨·김씨와 서울에서 동거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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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초 경찰은 A씨를 서울 서초 양재파출소로 임의동행하기도 했는데, 이때 두 사람은 A씨를 데려가겠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A씨 몸에서 폭행 흔적을 확인한 파출소 경찰관이 대구에 있는 A씨 부친에게 직접 연락해 인계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경찰은 당시 A씨가 파출소로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선 "밝힐 수 없는 이유"라며 말을 아꼈다.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A씨는 달성서에 출석해 피해진술조서를 작성하는 등 본격 수사가 시작됐지만, 사건은 관할권 문제로 같은 달 2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이첩됐다.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B씨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안씨와 김씨는 올 1월 24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고 신문조서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A씨가 자신들을 고소한 사실에 앙심을 품고 지난 3월 말 대구에 있던 피해자를 서울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A씨를 강압하며 경찰에 허위진술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심지어 경찰이 '피해자 대질조사'를 위해 출석을 요구하려 A씨에 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나 지금 지방에 있다"고 대답하게 하거나 두 번째 연락이 왔을 때는 아예 전화를 받지 못하게 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결국 A씨는 지난 5월 3일 담당형사와의 통화에서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튿날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A씨 명의의 휴대전화로 경찰 측에 온 것으로도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상해사건 처리과정은 (이번) 범행 동기와 관련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금품 갈취 등 추가범행이 있었는지도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지난달 27일 (영등포서에서) 불송치 결정된 상해 건을 수사재개해 마포경찰서에서 살인사건과 병합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A씨의 사망 전 상황, 가해자들의 범행동기와 추가범행 여부 등을 규명하기 위해 안씨와 김씨의 휴대전화 3대, A씨의 휴대전화 2대를 디지털 포렌식했다. 또 사건이 발생한 오피스텔 및 주변·관련지역의 폐쇄회로(CC)TV와 이들의 통화내역도 확보해 분석 중이며 이들의 계좌거래 내역도 분석할 예정이다.
가해자들의 휴대전화에서는 가혹행위 정황이 담긴 영상도 여럿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A씨가 숨지기 며칠 전부터 A씨를 화장실에 가두고 학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이 사건 발생장소인 연남동 오피스텔로 이사한 지난 1일 피해자가 제대로 걷지 못해 가해자들이 그를 부축하는 CCTV 영상도 확인했다. 추가적인 CCTV 확인 결과 피해자는 이날 이후 건물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안씨와 김씨가 금품 갈취를 위해 A씨에게 물류회사 등의 일용직 노동을 강요한 뒤 수백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해당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그 외 금전적인 채무관계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지난 4월 30일 A씨 가족이 대구 달성서에 접수한 가출인 신고도 사건처리 적정성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A씨 가족은 지난해 10월 17일에도 한 차례 A씨에 대한 가출인 신고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경찰은 상해죄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한 영등포서의 수사과정도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들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된 지 17일 만에 A씨가 변사체로 발견된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한 것이다.
이한형 기자
경찰 관계자는 "상해사건은 서울청 수사심의계에서 수사지연 여부, 부실수사 여부 등 처리과정 적정성 등에 대해 감찰을 진행 중이며 조사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통상 '불송치' 사건은 검찰에서 사건기록을 살펴보고 재수사 등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검찰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막바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경찰은 이들을 구속시한이 만료되는 오는 21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다만, 기존에 영장이 발부된 혐의(살인죄)와 다른 죄목 적용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영장은 형법 상 살인으로 발부됐지만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조항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살인죄는 (양형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고, 특가법 상 보복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에 의한 살인의 경우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고 부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의 시신 부검 이후 "사망에 이를 만한 외상은 없었으나 폐렴, 저체중 등이 사망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라는 구두소견을 밝혔다. 아직 자세한 부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 A씨는 일상생활이 약간 불편한 정도의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경우 경찰 조사 시 동석자를 두지 않냐는 질문에 "담당 조사관이 피해자 진술을 직접 받아보지 못해 상태를 몰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피해자는 등록 장애인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앞서 상해죄 고소 당시 A씨 측이 전치 6주의 진단서를 제출한 점, 피해자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불송치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수사 감찰에서 확인해야 될 부분"이라며 "담당 직원은 범행 일시장소 등을 특정하기 위해 대질조사가 필요했는데 임의적이지 않은 피해자의 고소 취하 등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가해자 중 한 명과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것으로 파악됐다. 안씨와 김씨가 지난해 6월 강남구 역삼동 원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A씨가 이들의 거처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씨와 김씨는 중학교 동창 사이로,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3월 말 이후 이들과 거처를 옮겨 가며 같이 거주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