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왼쪽)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한형 기자
'윤석열 저격수'로 평가받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유력한 야권의 대권 잠룡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포함해 '검찰 공격수' 성향이 짙은 추 전 장관의 등판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3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추 전 장관은 이른바 '추윤 갈등'으로 불릴 만큼 장관 재직 당시 윤 전 총장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전임자인 조국 전 법무장관과 달리 특유의 저돌적인 스타일로 징계, 검찰 인사, 수사지휘권 발동 등을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개혁에 나선 문재인 정부와 잡음을 빚어온 윤 전 총장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최근까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윤 전 총장의 행보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냈고, 친문 성향의 여권 지지층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아왔다.
덕분에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과거사는 크게 희석됐고, 오히려 친문 지지층으로부터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을 보호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러한 추 전 장관의 행보는 한동안 각각 박스권에 갇혀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이른바 '빅3'의 구도를 흔드는데 영향력을 미쳤다.
추 전 장관은 리얼미터가 JTBC 의뢰를 받아 지난 19~20일 전국 성인 10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권 주자 중에는 39.7%의 이 지사와 15.2%인 이 전 대표의 뒤를 이어 3위(8.2%)에 이름을 올렸다.
여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윤 전 총장(32.0%)과 이 지사(29.3%), 이 전 대표(11.5%), 무소속 홍준표(4.4%)에 이어 5위(3.9%)를 차지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추 전 장관은 머니투데이-PNR리서치의 지난 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 대상 범여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6.1%로 이 지사(33.3%), 이 전 대표(13.6%)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표본호자는 95% 신뢰수준에 ±3.1%p. 앞선 모든 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3일 파주 헤이리 잇탈리스튜디오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20대 대선 출마선언을 하는 가운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추 전 장관이 그간의 온라인 행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대선 운동을 시작으로써 다른 주자들의 선거 전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윤 전 총장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왔던 이 지사와 달리, 한동안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친문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해 온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의 경우 선명성에서 추 전 장관에게 앞서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전 총리는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추미애 장관이 반사체가 되도록 한 게 아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제가 동료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내각에 같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팩트 사실로 보면 그런 평가도 사실과 부합한다"고 비판에 나섰다.
윤 전 총장을 지금과 같은 수준의 대권주자로 키워준 것이 추 전 장관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추 전 장관이 존재감을 나타낼수록 여권 전체에는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개혁과 윤 전 총장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과거처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최근 민주당 송영길 당대표가 공식 사과를 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 '조국 사태' 또한 재소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추 전 장관의 지지율이 높아질수록 중도 표심은 민주당에서 멀어질 수 있다"며 "힘겹게 국민들께 보여드린, 공정과 민생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민주당의 진정성은 뒤로 밀린 채 '조국'과 '윤석열'만 다시 불러낼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추 전 장관의 등판이 경선 일정 연기 논란 등으로 인한 내홍과 후보들의 지지율 정체로 고전하는 민주당 경선판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앞서 경선 연기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던 추 전 장관은 이날도 "국민의 처절한 고통을 생각한다면 공허한 논쟁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연기 반대론에 힘을 실었다.
이 지사, 박용진 의원과 함께 추 전 장관까지 연기 반대 의견을 펼침으로써 이를 둘러싼 갈등이 다소 이른 시기에 현행 당헌대로 정리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다른 여권 잠룡들이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던 강성 당원들의 표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경선을 앞두고 여권 지지층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추 전 장관은 이 지사와 같이 팬덤이 확실한 사람"이라며 "기존 주자들이 추 전 장관을 의식해 경선 전략의 변화를 꾀한다면 경선의 역동성 또한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성향이 뚜렷하고 지지층 또한 충분히 결집할 수 있는 반면, 함께 하는 인물이 적어 조직력이나 정책 기획력에서는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며 "3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 전 총리와의 경쟁, 대척점에 서 있는 윤 전 총장에 대한 공격 등에서 어떤 전략을 구사해 단점을 극복해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