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28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금메달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최강을 다시금 확인한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2012년 런던에 이어 2021년 도쿄에서도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오상욱(25·성남시청), 구본길(32), 김정환(38·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후보 선수 김준호(27·화성시청)가 나선 대표팀은 28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5 대 26으로 완파했다.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2연패다. 남자 사브르는 9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이번에도 한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대회 2연패를 이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선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았다.
2연패의 원동력은 끈끈한 호흡이다. 남자 사브르 세계 랭킹 1위 오상욱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형들과 워낙 흐흡이 좋다"면서 "영원하진 않겠지만 지금 멤버 형들이 너무 잘해서 계속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구본길은 "내가 계속 하게 해줄게"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만큼 격의 없이 선후배들이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이다. 구본길은 개인전에서 32강 탈락했지만 단체전 4강전과 결승에서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오상욱과 김준호 등 후배들이 잘 따라왔다.
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시상식에서 구본길(왼쪽부터), 김정환, 김준호, 오상욱이 서로 축하해주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구본길의 맹활약도 후배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 구본길은 "사실 나도 내 몸을 믿지 못하겠는데 후배들이 '형, 몸이 최고로 좋다'고 응원해주더라"면서 "그걸 듣고 나도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좋은 결과가 났다"고 말했다.
맏형 김정환은 이번 대회에서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로 역대 한국 펜싱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김정환은 "동료들이 워낙 잘 해줘서 내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김준호도 "개인전을 뛰지 못해 단체전 부담감이 있었지만 선후배들이 잘 이끌어줬다"고 공을 동료에게 돌렸다.
사실 이런 찰떡 호흡은 런던 때부터 시작됐다. 런던 대회 금메달 멤버인 구본길은 당시 막내였다. 김정환을 비롯해 원우영(39), 오은석(38)과 금메달을 합작했다. 구본길은 "런던 멤버가 아마도 도쿄 멤버보다 더 강할 것 같다"면서 "그때는 이탈리아나 루마니아 등 다른 국가들도 잘할 때여서 경쟁이 치열했다"고 돌아봤다.
형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구본길은 "원우영, 오은석 형들이 올림픽이 끝나도 더 대표팀을 이끌어줬다"면서 "올림픽 이후 베테랑들이 모두 은퇴했던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고 강조했다. 이어 "형들이 버텨줬기에 김준호, 오상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들은 세대 교체가 잘 되지 않아 전력이 약해졌다"고 분석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사상 최초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김정환(왼쪽부터), 오은석, 구본길, 원우영. 연합뉴스
남자 사브르의 전통은 이어질 전망이다. 막내였던 구본길이 형들처럼 정신적 지주가 돼서 후배들을 다독이며 이끌고, 현재 막내 오상욱과 김준호가 구본길이 되어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구본길은 "독일과 4강전을 이긴 뒤 해설위원으로 나선 원우영 형이 눈물을 쏟았다는 기사를 봤다"면서 "형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그 마음이 잘 전달됐다"고 애틋한 감정을 전했다. 김정환은 "내가 (2024년) 파리올림픽에는 나갈 수 없을 것 같지만 저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후배가 나오길 바란다"고 덕담했다. 김정환이 이제 원우영처럼 전설로서 후배들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펜싱의 역사를 연일 새로 써내려가고 있는 남자 사브르. 에이스의 거룩한 계보와 함께 정신적 지주의 역할까지 이어지면서 펜싱의 전설까지 자연스럽게 완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