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지구가 더 빨리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2050년으로 예고됐던 1.5℃ 상승 시점이 2040년으로 10년 앞당겨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제출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예상대로 경제계는 "목표가 과도하고 이행방안도 불명확하다"며 우려를 표했고, 환경단체는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는, 어불성설 시나리오"라고 비판에 나섰습니다.
당초 이번 ③편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RE100' 등을 다루려고 했지만 잠시 미루고 위의 두 가지 중요한 발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국제사회 새로운 준거 될 IPCC의 AR6 중에서 제1실무보고서 공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6일까지 진행된 제54차 총회에서 2021~2040년 중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담은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Sixth Assessment Report)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했습니다.
IPCC의 평가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영향을 따져 보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국제협력을 촉구합니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IPCC의 1차 평가보고서(1990년)를, 1997년 교토의정서는 2차 보고서(1995년)를, 2015년 파리협정은 5차 보고서(2014년)를 토대로 성사됐습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내년 11월쯤 확정되는 6차 종합보고서의 한 부분으로, '과학적 근거'를 다루는 제1실무그룹의 작품입니다. 여기에 '적응·영향·취약성'을 다루는 제2실무그룹과 '완화(온실가스 감축)'를 담는 제3실무그룹의 보고서 등을 더해 국제사회의 새로운 준거로 기능하게 됩니다. ①편 기사에서 소개한 2018년 10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 등 별도의 특별보고서 3편도 종합보고서에 담깁니다.
20년 내 지구 온도 1.5℃ 상승…원인은 바로 '인간'
그럼 제1실무그룹 보고서의 내용을, 기상청의 보도자료를 토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핵심은 '1.5도 상승'에 도달하는 시점이 기존보다 10년 빨라졌다는 경고입니다. 앞서 IPCC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온도가 2030~2052년에 1.5도 상승한다고 예측했지만 이번에는 그 시기를 9~12년 더 앞당겼습니다.
과거 170년 동안 전지구 지표면 온도의 변화.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서 발췌. 기상청 보도자료현재의 기후 상태를 보면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2011~2020년의 전지구 지표면 온도는 1.09℃ 상승했습니다. 이 영향으로 전지구 평균 해수면은 1901년부터 현재까지 0.2m 높아졌습니다. 평균 상승 속도는 1.3mm/년(1901~1971년)에서 3.7mm/년(2006~2018년)으로 3배 가까이 빨라졌습니다.
특히 2019년 주요 온실가스 농도는 CO₂(이산화탄소) 410ppm(백만분의 1), 메탄(CH4) 1866ppb(10억분의 1), 아산화질소(N₂O) 332ppb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CO₂ 농도는 지난 200만년 동안 최대값입니다.
보고서는 이를 토대로 "관측된 기온 상승은 인간의 영향에 의한 온난화 기여도와 일치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탄소 중립을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한과 메탄 등 다른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강력한 감축만이 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극한고온' 증가로 기후이변 심화…"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지구 온난화는 바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막는다고 해도 '극한고온'의 발생 빈도는 과거 산업화 이전(1850~1900년)의 '50년에 한 번 꼴'에 비해 8.6배 증가합니다.
지구온난화는 바로 이 '극한고온' 발생 빈도 강화로 이어지면서 77억 인류의 생명을 위협한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서 발췌. 기상청 보도자료특정 지역의 기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강수 변동성이 커지면서 한쪽에서는 홍수가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가뭄이 발생합니다. 최근 서유럽과 중국에서 일어난 홍수와 북미를 강타한 가뭄이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유럽과 북미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은 지금도 활활 타고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를 두고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77억 인류의 안전 때문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보고서는 인류에 대한 '코드 레드'(심각한 위기에 대한 경고)"라면서 "화석 연료와 삼림 벌채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를 질식시키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즉각적인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 특사도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과 다른 길을 택하지 않으면 폭염, 산불, 폭우, 홍수 등 기후위기 충격이 계속 악화할 것"이라면서 "세계에 지금 필요한 것은 진짜 행동"이라고 밝혔습니다.
드디어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환경단체, 일제히 비판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기후변화 대응방안을 논의할 COP26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이번 발표로 오는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196개국과 유럽연합(EU)이 한자리에 모여 기후변화 대응방안을 논의할 COP26(UN Climate Change Conference of the Parties)이 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각국은 COP26가 열리기 전까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목표로서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제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 5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한 것도 바로 이 NDC 제출을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입니다. 정부는 다음달까지 산업계, 노동계 등 각 이해 당사자는 물론 일반 국민의 의견까지 두루 수렴한 뒤 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 최종안을 10월말까지 발표할 예정입니다.
2050년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3개 시나리오 초안은 모두 석탄·LNG 발전을 중단하거나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림으로써 2018년 기준 7억2760만톤에 달하던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50년까지 최대한 감축한다는 목표 아래 세워졌습니다. 차이점은 사실상 전체 배출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환 부문의 '발전' 뿐입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공개한 세 가지 탄소 감축 시나리오를 비교한 표. 전환(발전) 부문의 차이를 중심으로 각 시나리오가 짜였다. 환경부 보도자료 발췌시나리오 1안은 2050년까지 수명을 다하지 않은 석탄발전소 7기를 유지합니다. 시나리오 2안은 석탄발전은 완전히 중단하되, LNG 발전은 유지합니다. 시나리오 3안은 석탄, LNG와 같은 화석연료를 활용한 발전을 전면 중단합니다. 각 시나리오는 2018년과 비교해 탄소 배출이 각각 96.3%, 97.3%, 100% 줄어듭니다.
탄소를 대기 중에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다는, 진정한 의미의 '넷 제로'는 시나리오 3안만 해당합니다. 환경단체들이 이번 초안을 두고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어불성설"이라며 일제히 비판에 나선 이유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여전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망인 1·2안에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한 것 자체가 탄소중립위의 빈약한 실력을 증명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도 "시나리오에는 중간 목표와 과정이 없어 2030년까지 감축목표도 없다"며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더 강한 어조로 우려를 표한 쪽은 경제계입니다. 세 가지 시나리오 초안 모두에서 산업 부문은 205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80%를 감축해야 합니다. 갈수록 산업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경제단체들은 탄소중립 방향은 공감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과도한 감축목표와 불명확한 이행방안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산업 부문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일자리 감소와 국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석유업계 단체인 대한석유협회도 "연료전환과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CCUS) 등 미래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불확실성도 크다"며 "시나리오대로 이행시 가동률 감소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기후 빌런'으로 불린 한국, 고민 더 깊어진다
세계 주요 국가의 탄소 배출 비교 표. 우리나라는 2018년까지만 해도 OECD 회원국 중 배출량 5위를 기록하며 '기후 빌런'으로 불릴 만했다. 환경부 보도자료 발췌우리나라는 한때 국제사회에서 '기후 빌런(Climate Villain)'으로 불렸습니다. 2016년 11월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언론 '클라이밋 홈 뉴스'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 4개 나라를 기후 빌런(악당 혹은 깡패)으로 지목했습니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은 2018년 정점을 찍고 완연한 감소 추세로 돌아섰습니다. 2019년에는 전년 대비 3.9%가 감축됐고, 2020년에는 무려 7.3%가 줄어들어 총배출량은 2015년 이전 수준인 6억4860만톤을 기록했습니다. 정부를 비롯해 각계각층이 모두 노력한 덕분입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에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환경부 보도자료 발췌'2050 탄소중립'은 목표 자체가 거창합니다. 산업화 이후 인류의 거대한 노정을 바닥부터 뒤집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더욱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절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시나리오 초안을 두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탄소중립 목표에서 후퇴했다는 지적과 준비 부족 상태에서 너무 앞서간다는 비판이 공존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당초 예상보다 1.5℃ 상승 시점이 10년 앞당겨졌다는 IPCC의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감안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더 가혹한 목표를 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 관문은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6입니다. 정부는 10월까지 발표하기로 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들고 이 회의에 참석하게 됩니다. 한때 '기후 악당'의 오명까지 썼던 우리 정부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