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깔아봅니다. [편집자 주]
최근 불거진 현대제철의 자회사 설립 갈등에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이 사실상 직접고용 의무가 없는데도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려다 논란에 휩싸였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는 사실일까?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현대제철에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를 내렸다. 이에 현대제철은 다음 달 1일 자회사 3곳을 출범시켜 비정규직 7천여명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비정규직 5천여명은 자회사 입사를 선택했지만, 나머지 2천여명은 '현대제철 본사가 직접 채용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결국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3일부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충남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국 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등 1400여 명의 노조원들이 현대제철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노동부 '시정지시'는 '권고'니까 어겨도 된다? NO, 파견법의 직접고용의무가 핵심!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내린 '직접고용 시정지시'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주요 근거는 현대제철과 비슷한 갈등을 겪었던 파리바게뜨의 판례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2017년 노동부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등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파리바게뜨는 이에 불복했고, 노동부가 부과한 과태료 162억 7천만원이 너무 많다며 시정지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노동부의 시정지시는 '명령'이 아닌 '권고'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애초 소송 대상조차 아니라고 보고, 파리바게뜨의 신청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고 각하했다.
이에 주목한 일부 언론은 노동부의 시정지시가 '강제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제철이 강제로 비정규직을 고용할 의무가 없는데도 노동부의 권고를 귀담아 들어 선제적으로 자회사 채용에 나섰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법원의 판단을 완전히 반대로 해석한 주장이다. 당시 법원이 파리바게뜨의 신청을 물리친 이유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파리바게뜨의 간접고용이 명백한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불법파견'을 벌였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했다. 즉 파리바게뜨는 노동부의 결정, 지시를 어겨서 과태료를 부과받았던 것이 아니라, 파견법에 명시된 직접고용의무를 어겼기 때문에 법 규정에 따라 과태료를 낼 상황에 놓였다.
다만 노동부는 무분별하게 과태료를 부과해 전과자를 양산하거나 기업 경영의 어려움이 커지지 않도록, 과태료를 부과하기 전에 파리바게뜨가 위법사항을 스스로 시정해 적법한 상태가 되기를 미리 '권고'했다. 이것이 바로 '직접고용 시정지시'다.
행정소송의 집행정지는 행정청이 직접 내린 결정인 '처분'에만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이 파리바게뜨의 신청을 각하한 이유는, 과태료 부과 문제가 노동부의 시정지시가 아니라 파견법 위반 여부에 있다고 봤기 때문일 뿐이다.
이미 과태료 처분까지 내려진 현대제철…직접고용 해결 못하면 형사소송도 가능
양승조 충남지사(오른쪽 가운데)와 김홍장 당진시장(오른쪽 두 번째) 등이 지난 24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를 방문, 농성 중인 전국 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과 대화하고 있다. 당진시 제공현대제철에 내려진 시정지시 역시 노동부가 현대제철이 '불법'파견을 저질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정지시에 강제성이 없다고 해도, 파견법에 있는 직접고용의무는 당연히 남는다. 더구나 현대제철이 맞닥뜨린 상황은 파리바게뜨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당시 파리바게뜨는 노동부가 '경고'의 의미인 시정지시를 내렸고, 과태료가 실제로 부과되기 직전에 자회사를 통해 비정규직을 채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반면 현대제철은 이미 노동부가 제시한 시정기한을 넘어 지난달 초 당진공장과 순천공장에 각각 73억 3천만원, 46억 5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뒤에야 자회사 방안을 제시했다. 이미 노동부가 과태료를 부과한 시점에서 현대제철이 불법파견을 저질렀다고 못을 박은 셈이다.
만약 과태료가 부과된 이후에도 비정규직 직접고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져 현대제철 대표이사 등이 형사입건까지 당할 수도 있다.
금속노조법률원 송영섭 변호사는 "파리바게뜨 사건에서 시정지시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현대제철이 이를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것은 형식논리에 불과하다"며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것은 시정지시의 강제성 여부를 넘어 법을 위반했다는 얘기이며, 이를 반드시 시정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내하청, 직접고용하라"…사법부 판결 앞에 불리했던 현대제철
현대제철이 자회사 설립을 서두른 또 하나의 이유는 노조와의 법정 다툼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기 때문이다.
2019년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100여명은 현대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1심, 2심 모두 승소했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충남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국 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등 1천400여 명의 노조원들이 현대제철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현대 계열사만 살펴봐도 이미 불법파견한 노동자들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내려지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지자, 사측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하청지회 등이 모여 9800여명의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 7월 현대위아 사내하청 노동자 64명이 현대위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현대위아가 이들 직원을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 노동부가 내린 직접고용 시정지시까지 감안하면, 대법원에서도 현대제철 하청노동자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현대제철에서는 순천공장 노동자 400여명과 당진공장 노동자 3000여명도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내려지면, 다른 공장의 하청노동자들도 현대제철이 직접고용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장석원 언론부장은 "순천공장의 규모는 당진 등보다 작지만, 노동 과정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회사가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며 "만약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지면 순천 뿐 아니라 당진, 인천, 포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사측이 직접고용 의무를 피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자회사 안을 강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