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한형 기자동네 친구와 함께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던 정모(53)씨가 3분 넘게 정육코너 진열대의 한우 등심을 보고 있었다.
300g에 4만원이 넘는 가격에 정씨는 가격표만 바라보다 결국 발길을 돌렸다. 4인 가족이 배부르게 고기를 사 먹기에는 생활비가 빠듯했다.
"진짜 살 것 없다. 너는 뭐 살거야?"마트를 두 바퀴째 돌고 있지만 친구의 쇼핑카트도 텅 비어 있었다. 정씨는 내일 재난지원금을 받으면 그 때 고기를 사러 오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정씨는 "채소고 과일이고 안 오른 게 없다"며 "지원금 받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걸로 이미 올라버린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에 이어 1여년 만에 국민지원금이 풀리면서 고물가에 시달렸던 소비자들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전망이다.
하지만 특정 물품에 수요가 몰릴 경우 가격이 더 상승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대비 2.6% 올라 지난 4월 이후 5개월째 2%대 상승세를 지속했다.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넘어선 '서프라이즈'한 상승세다.
특히 식탁 물가인 농·축·수산물은 7.8%로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19와 폭염 여파로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상황에서 지원금은 꽁꽁 얼었던 지갑의 단비가 될 전망이다.
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전일 기준 배추 소매 가격은 1포기당 5천 386원으로 한 달 전보다 27% 상승했다.
오이(10개 묶음)은 1만 1231원으로 한 달 전보다 가격이 38% 올랐고, 애호박 1개는 2천83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1000원 넘게 오르며 무려 95.2% 증가했다.
추석 차례상 물가도 비상이다. 한국물가협회가 서울 등 6개 도시 전통시장 8곳에서 29개 제수용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4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이 26만1천270원으로 작년 추석 때보다 8.9% 증가한다고 예상했다.
달걀(특란)은 30개 기준 7천130원으로 44.3% 뛰었고, 쇠고기(국거리 양지 400g)와 돼지고기(등심 500g)는 각각 36.8%, 7.7% 비싸졌다.견과류 중에선 곶감(10개)이 39.3%, 대추(400g)가 14.9%, 밤(1kg)이 5.0% 올랐다.
은퇴 후 아내와 생활하고 있는 최모(70)씨는 "먹거리나 생필품 가격이 올라서 부담이었는데 지원금이 나오면 모처럼 아내와 함께 맛있는 것을 실컷 사먹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50)씨도 "우리집 1층에 슈퍼가 있는데 과일가격이 많이 올라서 깜짝 놀랐다"며 "지원금으로 추석을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원금이 소비 부양 성격이 큰 만큼 수요가 몰릴 경우 물가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실장은 "코로나19 이후 저소득층, 취약 계층은 소득이 줄고 소비 여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국민지원금이 지급되면 소득 보전효과가 발생해 소비 여력을 올려줄 수 있다"고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김 실장은 "다만 저물가에서 고물가 시대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지원금 효과로 특정 소비 활동이 활발해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늘어난 수요에 대비해 공급을 늘리는 등의 지원금 지급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