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권순일 전 대법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종민·이한형 기자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고심에 참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이 '개발 특혜 의혹'이 일고 있는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았던 사실이 알려지며 지난해 이 지사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당시 판결도 다시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2018. 5. 29 KBS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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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저는 그런 일 없습니다" 김영환 "그러면 성남시 정신보건센터에서 이재선(이 지사의 형)에 대해 아무런 문진이나 검진도 없이 정신병자라고 판명했습니까?" 이재명 "그거는 (형이) 어머니를 때리고 어머니에게 차마 표현할 수 없는 폭언도 하고,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고 실제로 정신 치료를 받은 적도 있는데 계속 심하게 하기 때문에 어머니, 저희 큰 형님, 저희 누님, 저희 형님, 제 여동생과 제 남동생, 여기서 진단을 의뢰했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직접 요청할 수 없는 입장이고, 제 관할 하에 있기 때문에 제가 최종적으로 못 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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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상고심에서의 최대 쟁점은 상대 후보자의 질문에 이 지사가 이를 부인하며 일부 사실을 진술하지 않은 채 답변을 한 것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이 지사는 2018년 5월 경기도지사 후보자 TV토론회에서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의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는 질문에 "그런 일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지사는 형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 진행을 지시한 사실이 있었다.
지난 2019년 1월 10일 오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단이 달랐던 가운데 이 지사의 혐의 인정 여부는 대법관 사이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당초 이 지사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대법원 2부)에 배당됐지만 소속 대법관들은 의견 합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8개월의 소부 심리 끝에 지난해 3월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사건은 회부됐고 여기서도 의견은 또다시 갈렸다. 관행 상 전원합의체 판결 최종 합의에서 대법관들은 가장 후임 대법관부터 최선임 대법관의 순서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대법원장은 대법관들의 의견 표명이 모두 끝난 후 의견을 표시하게 된다.
이 지사를 변호한 경력이 있어 사건을 회피한 김선수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대법관 사이에서 파기환송(무죄) 의견과 상고 기각(유죄) 의견이 5:5로 맞선 상황. 여기서 당시 최선임 대법관이었던 권순일 전 대법관이 상고기각 의견을 내며 무죄 의견이 앞서게 됐고 김명수 대법원장도 같은 의견을 내며 최종적으로 그해 7월 16일 파기환송 결론이 나왔다.
통상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의견이 동수로 갈린 상황에서 권 전 대법관의 의견이 사실상 전합 결론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권순일이 이재명을 살렸다"는 말이 법원 안팎에서 나왔다.
판결 자체를 두고 전통 보수 법관으로 분류된 권 전 대법관의 이력에 비춰보면 다소 예상치 못한 결론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상식적이지만 동시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기도 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이 지사의 상고심 결과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판단이라고 본다"면서도 "문제는 그간 대법원 판례와 다른 상식적인 판단이 '이재명 지사 사건'에서 나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파기환송심 판결 약 두 달 뒤 권 전 대법관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외에는 별다른 직위를 맡지 않고 있다가 최근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휘말린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던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연합뉴스화천대유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4년 추진한 대장동 개발사업(성남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한 회사로 한 경제지 기자 출신 A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공모 1주일 전 출자금 5천만 원으로 설립해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된 이 회사는 3년간 개발이익금으로 577억 원을 배당받아 야당에서는 이 지사를 향해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이 지사와의 관련성을 언급하지만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A씨의 제안으로 고문직을 수락했을 뿐 화천대유와 관련한 논란은 전혀 몰랐다고 의혹에 선을 그었다.
권 전 대법관은 "모든 공직을 마치고 쉬는 중에 법조기자단 대표로 친분이 있던 A로부터 회사 고문으로 위촉하겠다는 제안이 와서 공직자윤리법이나 김영란법 등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받아들였다"며 "그 회사와 관련된 최근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해당 내용을 전혀 알지 못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당시 대법 전합의 심리 대상에는 이 지사가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도 있던 것으로 파악돼 이 회사의 고문 수락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 후보 당시 선거공보물에 대장동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해 "성남시는 개발이익금 5,503억을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환수했다"고 적었는데 검찰은 이를 허위 혹은 과장으로 보고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대법원 판결문에는 직접 회사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지만 하급심(2심) 판결에서는 해당 사업의 참여 주체로 화천대유가 여러 차례 언급되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 고문직을 맡은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인 17일 고문직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