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주 A씨가 구속된 지 닷새 째인 지난 25일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위치한 곰 사육농장에 갇혀 있는 반달가슴곰의 모습. 취재기자가 우리에 다가가자 으르렁 소리를 내며 날뛰기 시작했다. 박창주 기자농장에 들어서자 곰들이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날뛰기 시작했다.
석 달 전 온순하게 드러누워 쳐다보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우리 안팎에 텅 빈 먹이그릇이 놓여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농장주가 구속된 지 닷새 째. 사료를 제때 먹지 못한 곰들은 갈수록 예민해지고 있다.
먹이그릇은 비었고, 곰들은 배설물이 차오른 바닥과 쇠창살 틈에 고인 물만 연신 핥아 댔다.
한 동물행동 전문가는 "먹이 주러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경계심이 높아졌을 것"이라며 "또 먹이가 충분하지 않아 예민해지면 공격적인 이상행동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무방비 상태' 곰들, 집단폐사·탈출재발 우려
노후화된 철재 우리(케이지)는 대부분 녹슬어 있고 상부 차광막 등은 부서진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 농장에서 지난 7월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탈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박창주 기자26일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 농장주 70대 A씨가 구속되면서 경기도 용인(16)과 여주(79) 농장에 반달가슴곰 95마리가 방치되고 있다.
A씨의 혐의는 공무집행방해, 동물보호법위반, 야생생물보호·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지난달 불법증식이 확인된 곰 2마리는 압수 후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졌지만, A씨가 기르던 나머지 곰들은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압수 대상에서 제외돼 사실상 농장에 방치된 상태다.
먹이는 아침, 저녁으로 한강유역환경청, 용인시, 여주시, 시민단체가 주고 가는 게 전부다. 낯선 사람이 다니는 데다, 낮엔 사료와 먹을 물이 떨어져 곰들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곰들이 폐사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또한 예민해진 곰들이 노후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앞서도 지난 7월 용인 농장에서 곰 한 마리가 우리의 주저앉은 바닥 틈으로 빠져나갔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격리 조치하거나, 임시 보호조치에 대한 구상권을 농장주에게 청구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면서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말했다.
"불법행위 시 사육곰 '몰수 후 관리체계' 갖춰야"
곰들이 쇠창살 사이로 고인 물을 핥아 먹기 위해 모여든 모습. 우리 바닥에는 곰들의 배설물들이 잔뜩 쌓여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박창주 기자전문가들은 관계 기관과 동물보호단체 등의 후속 조치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적으로 사육곰이 수백 마리에 달하는 만큼, 유사한 사태를 대비해 사육곰의 동물권을 최대한 보장해줄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녹색연합 박은정 녹색생명팀장은 "상습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를 엄벌하고 사육개체를 몰수하려면 먼저 곰 보호, 관리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며 "권역별 임시보호시설을 확충하고 정부가 전남 구례에 조성 중인 국가 곰 보호시설도 조기 완공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A씨는 자신의 불법도축 행위를 숨기기 위해 올해 7월 6일 탈출한 반달가슴곰 마리 수를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로 부풀려 신고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A씨는 웅담 채취용으로 승인받은 반달가슴곰을 도축해 웅담을 채취한 뒤 규정대로 사체를 폐기처분하지 않고 다른 부위를 추가 채취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다른 곰들이 보는 앞에서 도축한 혐의도 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같은 종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지난해 6월 12일에도 다른 곰들이 보는 앞에서 쓸개 등을 채취하기 위해 같은 종류의 곰을 도축하고, 웅담을 채취한 뒤 사체를 폐기 처분하지 않고 지방, 발바닥 등을 추가 채취한 혐의로 올해 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함께 용인 농장에서는 지난 2012년에도 곰 2마리가 탈출해 모두 사살된 바 있다.
한편, 전국적으로 웅담채취용이나 전시관람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국내 사육곰은 모두 369마리(8월말 기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