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연합뉴스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며 '슈퍼 비둘기' 역할을 자청했던 각국 중앙은행들이 최근 급격하게 치솟는 물가를 잡기위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유동성 공급을 주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조차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에 조기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자본 이탈을 우려한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24일 공개된 11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다수의 참석자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보다 계속 높을 경우 현재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자산매입 속도를 조정하고 기준금리를 올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장기적 물가 안정과 고용 목표에 해가 될 수 있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임이 확정된 뒤 "높은 인플레이션이 음식 주거 교통 등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가계에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며 조기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제로금리와 자산 매입 조치를 통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슈퍼 비둘기'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던 파월 의장과 연준조차 인플레이션 장기화라는 위기 앞에 무릎을 꿇고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변신을 예고한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연합뉴스실제로 미 상무부가 24일 공개한 10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년동월비 5% 올라 1990년 11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 10일 공개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6.2%로 역시 31년만에 최고치를 새로 썼다.
미국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장기화 조짐에 화들짝 놀란 선진국들도 기준금리 인상을 준비중이거나 이미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18년 8월 이후 한번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은 영국 영란은행(BOE)은 지난 4일 통화정책위원회(MP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는 했지만 "현재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향후 몇 달 안에 사상 최저치인 현재의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리 상승을 억누르고 있는 호주도 돈 풀기를 통한 금리조절 정책을 철회하기로 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했고,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노르웨이와 뉴질랜드는 이미 기준금리를 두차례 인상했고, 앞으로 금리를 더 올릴 예정이다. 한국 역시 인플레이션과 가계대출 급증 등의 이유로 지난 8월과 이번달 두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제로금리 시대를 끝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신흥국은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에 더해 선진국들의 긴축으로 자본 이탈 우려까지 커지며 금리 인상에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통상적으로 선진시장에서 긴축이 시작되면 투자자들이 자본 회수에 들어가는데 가장 먼저 자본을 빼는 곳이 신흥국이다.
체코와 폴란드 중앙은행은 최근 단숨에 기준금리를 1%p 이상 올렸다. 또, 브라질·러시아·헝가리·멕시코·페루·칠레·콜롬비아 등도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이상 대열에 합류함에 따라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제로금리 시대는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오일쇼크 등으로 인플레이션의 일상화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찾아왔던 1970년~1980년대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린 원조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을 거론하며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