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국회가 노동계의 숙원 요구사항인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개정안을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렸지만, 법안 처리에 대한 입장 차가 커서 자칫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6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기 위한 관련 개정안을 심의한다.
법이 만든 노동권 차별지대, 5인 미만 사업장…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로 勞使 대립 팽팽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 임원들이 14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찾아 박대출 환노위원장을 면담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가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서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다수의 노동 법안을 충분한 논의 없이 강행 처리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며 즉각적인 중단을 요청했다. 연합뉴스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 따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고·부당 전보에 대한 제한이나 노동시간 및 연차·공휴일, 연장·야간·휴일 수당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안들이 발의됐지만, 지난 9일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될 때까지 처리되지 못했다. 하지만 회기 후에도 여당 등을 중심으로 관련 공청회가 이어졌고, 결국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시 개정안을 다루기로 했다.
경영계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면 영세사업자에 과도한 부담이 몰린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영계 단체들은 지난 14일 국회 환노위를 찾아가 "각 법안이 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선행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양옥석 인력정책실장은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이 힘들었고, 특히 최근 코로나 변이로 다시 경기가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논의가 적절한가 지적할 수밖에 없다"며 "충분한 실태를 파악하고 영향을 분석했느냐, 노동계의 일방적인 주장을 수용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영세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를 올해 안에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 공동기자회견에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4일 한국노총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를 연내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또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폐지 공동행동'은 지난 13일부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근로기준법은 말 그대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에게 평등하게 차별없이 적용돼야 한다. 또다시 입법을 미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적용 확대하자' 원칙에는 공감하지만…적용 조항 범위 놓고는 '동상이몽'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여야 모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도 최근 임이자 의원이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인정하면서 논의의 물꼬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발의된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각 개정안 간의 입장 차가 커서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대안 토론회에서 대표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우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개정안은 근로기준법을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사업장에 전면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의 경우 부당 해고 금지, 근로시간 제한 등 주요 조항 중 일부를 추가로 적용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같은 당의 윤준병 의원 개정안은 이 의원 안과 비슷하지만,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포괄적으로 적용하자는 원칙까지 명시했다.
반면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의 개정안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확대할 경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그쳤다. 또 같은 당의 황보승희 의원 개정안은 '직장내 괴롭힘' 관련 조항만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개정안 내용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대선 후보들의 '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지난 15일 한국노총을 찾아 "직장내 갑질과 성희롱은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며 "사측한테만 부담을 지우면 (영세사업장은) 지불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노동자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서 내놓은 개정안 내용을 종합한 듯한 발언이다.
사회적 합의·패스트트트랙 논의에 법 개정 늦춰질라…勞 "지금 당장, 전면 적용하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에서 열린 '윤석열 후보-한국노총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문제는 국민의힘 측이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어 국회 논의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윤 후보도 한국노총을 찾은 자리에서 "소상공인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속도를 조금 늦춰야 한다"며 "실태를 잘 확인해서 사회적 합의나, 절차를 존중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관련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반대할 경우에 대비해 여당은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더라도 최장 330일이 걸리기 때문에 대선 국면 등을 고려하면 내후년 상반기로 논의가 미뤄질 수 있어 사실상 관련 논의가 중단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자칫 이번 국회 논의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의 낙인을 다시 찍을 수 있다며 근로기준법을 지금 당장,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 관련 법·제도를 차등 적용하는 일은 근로기준법 만의 문제가 아닌, 널리 퍼진 관행이나 다름없다. 당장 주52시간제나 유급 휴일 적용 등 사안도 소규모 사업장들은 후순위로 밀렸고, 중대재해처벌법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만약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지 않는다면, 비단 근로기준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등 대우를 국회가 재확인해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前) 민주노총 위원장인 권리찾기유니온 한상균 대표는 "근로기준법을 바로잡는 일에서도 부분 적용한다면 차별이 더 확산되고, 법 제도의 규모에 따른 차별이 고착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사용자들 사이에 '사업소득, 사업장 쪼개기 등으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확산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어 "보편적 권리를 차별 없이 적용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정치적 거래,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오만한 일"이라며 "노동 기본권을 넘어 인권의 개념으로 보자면 전면 적용이 가장 절실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