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원회의서 발언하는 김정은. 연합뉴스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연말 전원회의 보고에서 인민들의 식생활 문화 개선 문제를 꺼내들었다.
옥수수·감자가 아니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식생활 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농지면적 배정 등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김정은, 인민 식탁 '쌀과 밀가루 위주'로 바꾼다
시장화 과정에서 북한 인민들의 입맛이 이제 옥수수·감자에 만족하지 않고 쌀밥과 빵, 육류와 생선 등 매우 다양하게 변화된 현실을 감안한 조치이다.
제재와 무역단절로 아무리 어려워도 전체 인민들의 식탁만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10년을 마무리하고 다시 10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열린 북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즉 '식의주 문제의 해결방안'이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국경이 막히고, 유동적인 국제정세로 제재 완화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식량생산 증대와 살림집 건설 등 먹고 사는 문제에 주력함으로서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중에 별도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 발전의 위대한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보고를 했다.
北 연말 전원회의 노동신문 보도 중 절반이 농촌진흥 문제
북한 전원회의. 연합뉴스전원회의 논의 사항을 전한 노동신문 보도의 절반이 바로 농촌진흥 문제였다. 북한의 표현대로 '중요하게 취급'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구체적으로 "농업근로자의 사상의식 제고, 농업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생활환경의 근본적 개변" 등 3대 목표를 제시했다.
먼저 농업 생산과 관련해서는 10년의 목표를 제시했다.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10년 동안에 단계적으로 점령해야할 알곡생산목표와 축산물, 과일, 남새, 공예작물, 잠업생산 목표"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의 증대, 농업부문에 대한 설비·자재·자금의 무조건적 보장을 지시했다.
아울러 "농촌의 면모와 환경을 결정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을 사회주의 농촌건설의 최중대과업"이라고 하면서, "가까운 앞날에" 전국의 모든 농촌을 심지연시 수준의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을 표명했다.
이를 위해 국가가 모든 시·군에 농촌건설용 시멘트를 우선 공급하고 살림집 건설을 우선 추진하며, 주요 자재들과 마감건재들도 국가적으로 보장하는 과업을 제시했다.
北 농촌생활 환경개선·농촌진흥 '초기 새마을운동'과 유사
북한 농사 독려 선전화. 연합뉴스농업생산력 증대와 농촌 생활환경 개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북한의 농촌진흥 방안은 우리의 초기 새마을운동과 유사하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노동당 중앙위 8기 4차 전원회의 결과 분석 자료에서 "군(郡)마다 하나의 리(里) 정도를 시범지구로 정하여 노후한 주택들을 허물고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식 새마을 운동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국경봉쇄와 대북제재로 외부 자원조달이 끊긴 상황에서 북한의 야심찬 농촌진흥 방안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지는 불투명하다.
내부 자원의 총동원만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식량 증산을 위한 비료 등 외부 원자재 도입 수요"를 어떻게 충당하느냐가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비상방역사업을 국가사업의 제1순위로 놓고 사소한 해이나 빈틈, 허점도 없이 강력하게 전개해나가야 할 최중대사로 다시금 지적했다"고 밝혀, 비상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 기조를 당분간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나라의 방역기반을 과학적 토대 위에 확고히 올려 세우고 방역부문의 물질 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갖출 것", "방역을 선진적이며 인민적인 방역에로 이행시킬 것" 등을 언급함으로써 생활방역으로의 전환 계획을 일부 내비치기도 했으나, 전 세계의 코로나19 약화와 함께 전체 인민의 백신접종, 코로나 치료제의 충분한 확보 등이 없다면 국경개방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경개방과 무역재개가 없다면 북한은 기존의 자력갱생 노선대로 내부자원을 계속 쥐어짜며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北 농민 생산 의욕 고취할 제도 개선 조치 없어
북한의 논밭갈이 모습. 연합뉴스더 중요한 문제는 이번 회의에서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시킬 제도적 개선 조치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실시해온 분조관리제 안에서의 포전담당책임제 이상의 인센티브 도입은 없었다. 집단주의를 토대로 한 국가주도의 농업건설 방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물론 북한은 협동농장들의 경제적 토대를 보강하기 위한 '혁명적 중대조치'로 "협동농장들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자금을 모두 면제할 데 대한 특혜조치"를 선포했다.
협동농장은 통상적으로 그 해 생산한 곡물 중에서 일정 부분을 국가가 제공한 농자재 비용 몫으로 갚아야 하지만,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국가에 갚지 못하고 빚으로 남은 부분을 이번에 탕감해준 조치이다.
대부 면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는 않지만 북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임은 분명하다.
다만 북한 농민들은 국가보다 사적인 채무가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채무는 농업 생산물 중 국가 몫을 제외하고 초과 생산물을 경작 농민들에게 현물로 분배하는 포전담당 책임제 실시 이후 크게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다.
농업 생산의욕을 고취시키는 제도적 개선이 없을 경우 북한의 농촌진흥, 북한판 새마을운동의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식 새마을운동 성공 위해서는 코로나·핵·제재 문제 풀려야
북한이 농촌진흥의 모델로 제시한 삼지연시는 백두혈통 혁명을 상징하는 곳으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다른 농촌들은 국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돈주들을 동원해 자체로 성과를 내야만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농업생산력 증대와 농촌 생활환경 개선을 양대 축으로 하는 북한의 농촌진흥 방안은 초기 새마을운동과 아주 취지가 유사하지만, 우리의 새마을 운동이 지속적인 성공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대규모 원조 속에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이를 토대로 농촌 마을을 인근의 산업단지 조성과 연계하는 복합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농촌진흥의 초기 단계에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핵 문제와 제재문제 해결 없이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