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 회의에서 발언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스1 제공북한은 지난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미국을 향해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지난 2018년부터 중단됐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재개할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2017년까지 여섯 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이 주목받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정황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이 곧장 핵실험을 다시 감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핵실험 2017년이 마지막…50kt 규모 수소폭탄 실험 후 풍계리 폭파
현재까지 북한의 핵실험은 2017년 9월 3일 했었던 6차가 마지막으로, 함경남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려 리히터 규모 5.7에 달하는 인공지진을 발생시켰다. 규모는 50kt 이상으로 추정된다.
당시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전략적 핵무력 건설 구상에 따라 우리의 핵 과학자들은 9월 3일 12시 우리나라 북부 핵시험장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하였다"며 "이번 수소탄 시험은 대륙간탄도로케트 전투부에 장착할 수소탄 제작에 새로 연구·도입한 위력조정 기술과 내부구조 설계 방안의 정확성과 믿음성을 검토·확증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고 발표했다. '북부 핵시험장'이 바로 풍계리를 말한다.
이어 11월 29일 화성-15형 ICBM을 발사한 뒤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지만,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 무드가 조성됐다. 그해 4월 27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만나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뒤 악수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정상회담이 열리기 1주일 전인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7기 3차 전원회의를 열고 다음 날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다"는 내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북한은 5월 24일 남한을 포함해 5개국 기자단을 불러 영상 촬영까지 허용하며 이를 폭파했다. 그 뒤로 핵실험이 없었으니 이 곳도 다시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위성사진 등을 통해 차량이 왔다간 흔적 등이 포착됐기 때문에 관리 정도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후 특이 동향은 식별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시 주목받는 풍계리…정보당국 "관리는 하지만 특이 동향 없다"
19일 정치국 회의 이후로 이 곳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연히 모라토리엄 파기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일단 국가정보원은 지난 2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갱도가 방치돼 있으며 현재까지 특이 동향이 없다"고 현재까지와 비슷한 내용을 보고했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냈던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최근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계속 점검하면서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지관리 움직임에 변함이 없지만 새로운 건설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도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핵실험장이 어떤 면에서는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핵실험장을 폐기했다면 이런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유에 대해선 "방사성 물질 누출 여부를 계속 모니터해야 할 필요성도 있겠지만, 나중에 핵실험 결정을 내릴 때를 대비해 핵시설을 유지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합동참모본부는 24일 이 인터뷰에 대한 질문을 받고 "풍계리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주목할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핵실험장 자체에 대해) 유지보수 활동은 지켜보고 있지만, 갱도 관련 활동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핵실험 하려면 몇 달 복구 필요…도발한다면 위성 로켓 발사 가능성"
정보당국의 보고와 전문가 분석 등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이 당장 핵실험을 할 가능성 자체는 낮아 보인다. 바로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한 번에 '진도를 너무 나가는' 데다 풍계리 자체 사정, 국제정치 환경도 한몫한다.
북한은 19일 정치국 회의에서도 곧바로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을 재포치(재공지)"했으며,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 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공지)했다"고만 발표했을 뿐이다.
물론 북한이 그 동안 중지해 왔던 조치들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이런 언급을 통해 북한이 무엇을 재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뭔지는 언급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검토'라는 말을 우선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북한은 이미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한 만큼 실험이 더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하지도 않다. 6차 핵실험에서 50kt 이상 위력을 가진 핵탄두 성능을 이미 검증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25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공개한 순항미사일. 조선중앙TV 캡처게다가 풍계리 갱도를 4년 가까이 방치한 만큼 이를 다시 쓰려면 복구 작업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몇 달 이상이 걸린다. 아무리 전용 핵실험장이라지만 폭파까지 했던 갱도를 몇 년씩 방치했다가 그대로 쓰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2018년에 직접 폭파까지 했으면 균열 때문에 당장 쓰기 어렵다. 몇 달 이상 복구를 해야 한다"며
"지금은 '검토를 지시'하는 단계이고,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일 텐데 첫 번째가 풍계리를 복구하고, 두 번째가 동창리 미사일발사장(북한 표현으로 '서해 위성발사장') 관련 움직임을 활발히 하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동창리에서 지난해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공언했던 무기 중 '가까운 기간 내에'라고 언급했던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미사일 발사가 아닌 만큼, 수위를 단계적으로 올리면서 도발을 한다는 통념에도 들어맞는다.
핵실험 관련 가설에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다. 특히 중국은 다음 달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데 북한이 코앞에서 고강도 도발을 한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 중국에 상당 부분 경제를 의존하는 북한이 이같은 부담을 무릅쓰긴 어렵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7차 핵실험이나 ICBM 추가 시험발사는 사실 중국과 러시아로서도 허용하기 어려운 고강도 도발"이라며 "향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행동은 인공위성 로켓 발사와 SLBM 시험발사"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