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5인 미만 사업장'이 자칫 법망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시민이 숨지는 등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관련 의무를 위반했다면 1년 이상의 징역 및 10억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법이다.
하지만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법 적용 논란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법 제정 당시 5인 미만 사업장은 규모가 영세해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이야말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라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사고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가 35.4%에 달한다. 전체 산재사망사고의 3분의 1 이상은 중대재해법의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소상공인·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현실적으로 안전관리의무를 완벽하게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더라도 법의 취지인 '재해 예방'이 아닌 '사업주 처벌' 사례만 양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를 넘어 기업들의 '탈출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사업장 규모를 판단할 때 '상시근로자'를 기준으로 삼는데, 이 경우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자, 특고)나 플랫폼 종사자 등은 계산에서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배달플랫폼 업체가 직접 종사자를 고용한 경우나, 대규모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라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오른다.
그런데 지역의 소규모 배달대행사의 경우 수십 명의 종사자에게 일감을 주는데도 '상시근로자'는 주문을 중개하는 소수의 인원만 고용하기 때문에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이들에게 음식을 건네는, 직원을 대여섯명 고용한 작은 식당의 사업주는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역차별'이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악용해 중대재해법 단속을 피하려 기업들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꼼수 부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수법은 비단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횡행하고 있는 문제다. 근로기준법의 해고·부당 전보 제한, 노동시간 및 각종 수당 등 주요 조항이나, 공휴일법의 대체공휴일 등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사업주는 거짓으로 사업장을 쪼개서 각각 5인 미만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고용한 노동자를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로 위장 등록하도록 해 법망을 피해가고 있던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게다가 중대재해법이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정조준하자, 이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로펌 등을 통해 경영자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로펌 등에 큰 비용을 들이기 어려운 소형 사업장들에게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손쉽게 중대재해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국회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제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달 25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5인 미만 사업장과 경영책임자 등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어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도 비슷한 취지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법을 적용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다만 이 개정안들이 과연 국회 문턱을 제때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에 가깝다. 불과 1년 전 제정됐고, 시행 시점도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마당에 보수 야당의 반대를 뚫고 법 개정 작업에 속도가 붙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5인 미만 사업장 문제 해결에 천착하고 있는 노동단체인 권리찾기유니온 정진우 사무총장은 "정부 당국이 당장 응답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사무총장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위장 문제는 고용노동부도 인정했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국회에서 약속까지 했지만, 실제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며 "법 개정 문제를 차치하고, 애초 노동부가 이러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를 관리 감독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적발되더라도 제대로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대재해법을 불법·편법으로 회피하려는 사업장을 선제적으로 감독해서 절대로 피할 수 없게 하겠다는 신호를 사업주들에게 보내야 할 것"이라며 "근로감독관들이 '상시근로자' 위장 사업장에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의무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직무 규정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