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공동취재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협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몸을 낮추고 있지만, 양측 주요 인사들 간 조롱과 폭로전이 이어지며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안 후보와 앙숙(怏宿) 관계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안 후보 측을 도발하면서 당내에선 이 대표의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공개 양자 회동 폭로전 벌인 이태규·이준석…'책임 떠넘기기' 공방전
국민의당 이태규 총괄선거대책본부장과 국민의힘 이 대표는 23일 오후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9일 비공개 양자 회동 관련 내용을 폭로했다. 폭로 공방전의 발단은 이 대표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발언이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민의힘 측 관계자에게 '안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고 제안을 해온 것도 있다"고 언급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물밑 협상 과정에서 안 후보 측 내부에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국민의당 이태규 총괄선대본부장이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달 초 안철수 대선 후보의 사퇴를 조건으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로부터 합당 제안을 받았다'는 내용의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공동취재국민의당은 발칵 뒤집혔다. 공식 논평을 통해 이 대표에게 "해당 인사가 누군지 밝히라"고 촉구한 데 이어 암암리에 '배신자'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이 본부장 또한 윤 후보 측과 단일화 관련 물밑 교섭을 담당해온 만큼 의심을 받는 처지에 몰리자, 긴급 기자회견에서 포문을 열었다.
이 본부장은 이달 초 이 대표와 비공개 양자 회동을 한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자신은 이 대표가 언급한 '배신자'가 아니라고 했다. 이 본부장은 이 대표와의 비공개 물밑 협상까지 공개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을 설명하면서 비판의 화살을 이 대표에게 돌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당 이태규 총괄본부장이 밝힌 '합당 제안'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이날 오후 2시쯤 이 본부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4시간 만인 오후 6시쯤 이 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에 나섰다. 양측의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하면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수렴된다.
안 후보 측 내부 배신자 공개 여부, 단일화 및 합당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분 논의, 물밑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 안 대표를 향한 과도한 비난 등에 관한 부분이다.
이 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 내에 안 후보를 주저 앉히겠다고 제안한 사람이 있었다는 발언에 대해 이 대표에게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밝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해당 인사가) 저에게 그런 말을 전할 때까지는 아마 선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치적인
예의상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다만 이 본부장은 해당 인사가 아니라고만 했다.
이 본부장과 이 대표는 비공개 회동에서
합당 조건으로 주요 조직 참여와 종로 공천 등 구체적인 지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 본부장은 "안 후보가 후보직을 깔끔하게 사퇴하고 합당하면, 선거 후 특례조항을 만들어 최고위원회, 조강특위, 공천심사위에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종로 보궐선거 나간다면 공천할 수 있고, 아니면 선거 후 부산시장 출마 문제로 민주당 의원 중 선거구가 빌 가능성이 있으니 여기 보궐선거를 나가도 되지 않겠냐고 이 대표 본인의 견해를 말했다"고 했다. 단일화에 합의할 경우엔 지난 11일 진행한 '열정 열차' 행사 도착지인 전남 여수에서 두 후보 간 이벤트도 준비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
는 "양당의 공식 합당을 위한 정상적인 협상의 과정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의 사퇴 관련 의중이 확실한지 모르나, 공식 합당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이 본부장을 만난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이 대표가 페이스북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안 후보를 조롱하거나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 공방도 벌어졌다. 이 본부장은
"이 대표는 합칠 대상에 대해 그렇게 모질게 정치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고 인격적으로 굴욕감 느끼게 하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안 후보에게 지속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이유가 뭔지, 진심이 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안 대표 측에서 오히려
단일화 협상에 있어서 본인들의 여러 태도 변화에 대한 책임론을 국민의힘 쪽에 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며 "
국민의당을 예우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단일화 무산 책임론 등) 그런 부당한 공격을 당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윤석열·안철수, 협상 결렬 후 더 깊어진 불신…'이준석 리스크' 우려도
표면적으론 이 본부장과 이 대표가 양자 간 비공개 회동을 폭로하며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겼지만, 이면에는
안 후보와 윤 후보 측 사이에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안 후보가 사실상 단일화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일단 야권 분열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후보 측에선
단일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물밑 교섭을 진행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언론에 전달하고 있지만, 국민의당 측은 이런 행동조차 언론 플레이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의당 선대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윤 후보 측 행태가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안 후보에 대한 고사 작전을 생각한 게 아니고 정말 단일화에 대한 뜻이 있다면 비인간적인 공격을 해대는 이 대표를 먼저 통제시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이날 오전 '배신자' 관련 인터뷰 발언 이후 국민의당의 반박 논평이 나오자, 재차 페이스북에서
"국민의당 논평인데 막말 쩌네요"라며 "이제 와서 국민의당 쪽 거간꾼들 색출 작업에 제가 도움 드릴 일이 없다"고 했다. 전날에는 안 후보가 부산 유세에서 윤 후보를 저격한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댓글로 ㄹㅇㅋㅋ 네 글자만 치세요"라고 적었다. 'ㄹㅇㅋㅋ'는 '레알(정말)ㅋㅋ'이라는 의미로 통상 상대방을 비웃을 때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단일화 협상을 앞두고 이 대표가 안 후보 측을 과도하게 자극해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초박빙 상황이 지속될 경우 안 후보와의 단일화 없이 대선 패배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윤 후보 측 선대본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협상 진행 상황이 살얼음판인데 이 대표가 위험수위를 오가고 있다"며
"만일 협상이 틀어져 윤 후보 지지율이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역전을 당하면 당장 그 책임론이 이 대표를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현재 상황으론 4자 대결에서도 대선 승리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이 대표의 언행이 중도표심을 자극하고 있다"며 "
안 후보 측 유세차량 사고의 '고인 유지' 발언 같은 경우엔 일반인들이 공감하기 힘든 발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