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지 나흘째인 27일(현지시간) 시가전이 벌어진 제2의 도시 하리코프의 거리에서 러시아군 병력수송용 장갑차 한 대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상당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진짜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고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럼에도 만약 전쟁이 난다면 러시아가 쉽게 이길 거란 전망이 유력했지만 현재로선 꼭 그렇지도 않다.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전쟁이란 행위는 언제나 예측불허의 대상이다.
우크라이나가 정말 결사항전한다면 아무리 막강한 러시아도 쉽게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국외탈출을 거부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러시아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민초들의 저항은 이미 정신력의 승리를 보여준다. 세계는 그런 우크라이나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 전력상 러시아의 승리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왕에 칼을 뽑아 든 이상 쉽게 물러날 리는 없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치명적 일격을 가해 우크라이나를 '실패국가'로 만들 것이란 관측이 있다. 어떻게든 자기 세력권에 둘 수 있다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우크라이나인들의 용기와 희생도 헛된 것이 되고 오히려 참극만 키울 수 있다. 설령 러시아를 어렵사리 격퇴한다 해도 영광보다 상처가 더 크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 자체를 피하는 게 최상의 전략임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지도자 용기 중요하지만 지략 겸비해야…전쟁 못 막은 책임 막중
국가 지도자의 용기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지혜와 지략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젤렌스키는 전쟁 승패를 떠나 상황을 이 지경으로 이끈 책임이 크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서방의 경고를 거듭 무시했다. 러시아가 국경에 10만 병력을 배치했음에도 이전에도 그랬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정세 판단 미숙은 최소한의 대비조차 못하게 했다. 러시아군이 불과 9시간 만에 수도 키예프 근처까지 육박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야당은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 불안감 잠재우기에만 급급하다며 끊임없이 경고음을 냈지만 허사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동영상을 통해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처음부터 전쟁을 피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서방과 러시아의 입장이 좁혀질 수 없는 성격이란 판단이 섰다면 '핀란드화' 같은 중립화 방안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참화를 막았어야 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강경 여론에 밀려 별 대책도 없이 시간을 허비했다. 진정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비극은 자신의 운명을 서방과 러시아의 협상에 내맡긴 순간 비롯됐다. 올 초부터 우크라이나 문제를 다루는 국제협상이 줄줄이 열렸지만 정작 당사자는 끼지 못했다. 막상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믿었던 서방의 지원은 실망스러웠고 고립무원에 빠졌다. 서방은 절박한 군사 지원 대신 경제제재에 나섰지만 화급한 불을 끌 수는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파병은 없다고 누차 얘기했는데도 무슨 심산으로 전쟁까지 치달았는지 의아한 부분이다.
협상에서 배제되고 전쟁 때는 고립무원…안전보장 각서는 휴지조각
지난 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재한 우크라이나인이 국기를 흔들고 있다. 황진환 기자따지고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만의 잘못도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30여 년의 기회가 있었지만 성공적인 발전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 독립 초기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승계한 핵탄두 4천여기를 필두로 세계 3위의 핵 강국이었다. 비옥하고 광활한 토지와 대규모 중공업 단지 등 산업 여건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국가'라는 지정학적 약점과 내부 민족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는 국가의 중심을 잡고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역대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친러파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혈시위 끝에 탄핵된 뒤 친서방 포로센코와 현 젤렌스키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2004년 오렌지 혁명과 2013년 유로 마이단 시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친러 반군의 돈바스 내전이 줄을 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면교사는 자강, 통합, 균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한미동맹이란 든든한 자산이 있지만 격변하는 국제질서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핵 포기를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한 부다페스트 각서는 강대국 정치 앞에 휴지조각이 됐다.
우크라이나가 핵만 포기하지 않았어도 지금의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란 만시지탄도 있다. 하지만 당시 핵 포기는 신생국가로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등의 핵무기는 소련 중앙정부의 통제 하에 운용돼왔기 때문에 자체 보유 능력 자체가 의문시됐다는 것이다.
'끼인 국가'의 반면교사는 자강 통합 균형…외세 의존 버리고 단결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핵 담론은 여전히 22위(글로벌파이어파워 기준)의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가진 현실을 덮고 있다. 캐나다가 23위, 폴란드가 24위, 북한은 30위인 점으로 볼 때 재래식 군사력도 잘만 활용한다면 방어하는 입장에선 누구와도 해볼 만하다.
친서방과 친러파로 나뉜 우크라이나의 분열은 통합의 승수효과(시너지)에 걸림돌이 됐을 뿐 아니라 외부세력과의 균형점을 잡는 것도 방해했다. 비록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더라도 단결된 힘으로 자주권을 지켜온 역사적 사례는 적지 않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비슷한 처지의 한국도 "
우크라이나 사태를 교훈 삼아 미국과 중국 양측과 평화를 유지하고, 결코 어느 쪽에 너무 치우치거나 하지 않으면서 양측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략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인류공동체의 신성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도탄에 빠뜨린 지도자에 대해서까지 온정적일 이유는 없다. 국제정치의 냉정함을 망각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진짜 교훈을 놓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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