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에 설치된 15㎝ 높이의 난간. 금속노조 제공지난 2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50대 노동자가 아연을 녹여 액체로 만드는 설비에 빠져 숨진 가운데, 사고 현장을 살핀 노동계가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안 된 상태였다"며 현대제철의 안전조치 미비를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꼽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금속노조는 충남노동인권센터 새움터와 금속노조 충남법률원이 함께 진행한 사고 현장 조사와 유사 작업 현장 조사, 조합원 인터뷰, 고용노동부 자료 등을 토대로 한 사고조사보고서를 7일 발표했다.
지난 2일 오전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냉연공장에서 50대 근로자가 공장 내 대형 용기(도금 포트)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는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 등에 안전조치를 하도록 돼 있고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에는 현장의 개구부에 안전난간, 울타리, 수직형 추락방망 또는 덮개를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는 추락 방지를 위한 방호 조치들이 이뤄져있지 않았다. 작업이 이뤄지는 후면에 설치된 난간의 높이는 고작 15㎝ 정도로 산안법 상 안전난간의 기준인 90㎝ 이상에 미치지 못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충남노동인권센터 새움터는 "사고 현장에는 작업자가 안전대를 착용하고 안전대를 부착할 수 있도록 고리 형태의 로프가 2곳에 설치돼 있었지만, 고정돼 있어 작업자의 이동과 작업이 제한적인데다 일부 작업지점에서는 팔과 다리 등 신체의 일부가 포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불안전한 구조였다"고 했다.
용융아연이 담긴 포트(왼쪽)와 작업 공간. 금속노조 제공현대제철은 해당 공정의 10대 안전수칙의 하나로 도금포트 추락 방지를 위한 관리적 조치로서 작업감시자를 배치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제어실에서 설비의 운전상황을 관리하는 오퍼레이터와 포트의 부유물(드로스)을 제거하는 작업자(숨진 50대 노동자)만이 작업을 수행해왔다고도 보고서는 지적했다.
숨진 노동자가 속한 현장은 유사 공정 중에서도 열악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냉연공장의 나머지 포트 공정에는 로봇이 설치돼 있었고, 최소 2명 이상의 포트 작업자가 배치돼 있었다고 보고서는 말했다. 이를 두고 금속노조는 "사고 공정의 가동률이 30% 수준이기 때문에 사측은 인원투입비용 대비 수익을 고려해 단독작업방식을 유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460도가 넘는 아연이 가득 담긴 포트 주변에서 직접 드로스를 제거하는 위험한 작업 방식이 작업표준서나 작업매뉴얼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채 10년 이상 이어져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위험의 외주화'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현대제철이 해당 공정의 노동자들을 별정직으로 고용한 것을 두고, 보고서는 "산안법 개정이 도금작업의 외주화를 금지한 것은 이 작업이 원청이 직접 관리해야 하는 위험작업이라는 취지였지만 현대제철은 이들을 온전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해당 공정의 위험은 여전히 관리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현대제철 홈페이지 캡처보고서는 "유사 사고들이 있었고, 근로감독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의 위험성을 제기했고, 산안법 개정으로 위험 업무를 원청이 직접 관리하도록 정해지는 등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현대제철은 이 모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고 결국 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와 현대제철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업무매뉴얼 등 사고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현대제철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당진제철소 사망사고 사흘 뒤인 지난 5일에는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 2차 하청업체 소속의 20대 노동자가 1t 무게의 철골구조물(금형기)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