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이 상환기일을 어기고 그 주식을 이중 양도해 재판에 넘겨졌으나 대법원은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자신의 회사 주식 1만 2500주(7600여만 원 상당)를 담보로 해 피해자 B씨로부터 5천만 원을 빌리는 금전소비대차·주식양도담보계약을 체결했다. 상환기일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주식 소유권을 넘긴다는 내용이다.
A씨는 약속과 달리 상환기일인 2개월 뒤에 변제를 하지 않았고, 3개월이 더 지난 시점에는 이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넘기기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이미 20억 원이 넘는 빚을 가지고 있어 돈을 빌리더라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봤다. 이에 배임죄가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예비적으로 사기죄도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채무자가 채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담보물을 처분했다고 해도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근거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저버리고 고의로 불법행위를 해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켜야 하는데, 채무자가 담보물의 가치를 유지하는 의무는 '자신의 의무'이지 '타인의 사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법리다.
예비적 공소사실인 사기죄도 무죄였다. 주식 명의를 B씨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꾼 점이 석연치 않기는 하지만 돈을 빌리면서 충분한 담보를 제공한 A씨가 변제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는 혐의가 완전히 입증되지는 않았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검찰은 적어도 사기죄는 유죄로 봐야 한다며 항소했고, 2심은 이를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5천만 원을 차용할 당시 채무 초과 상태에 빠져 있었고 사업도 어려워지는 등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A씨가 차용금 5천만 원보다 가치가 큰 주식을 유효하게 양도담보로 제공한 이상, 사후적으로 제삼자에게 주식을 이중 양도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담보가 충분치 않았다'고 볼 수 없고 편취(속여 빼앗음)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