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지난 3주 동안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했다. 최근에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내보낼 서울시장·경기지사 후보 물색에 한창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물론 지방선거에 출마할 유력 후보들까지 모두 '이재명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당내에서 대선 패배의 원인에 대한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진정한 쇄신과 성찰, '6월 지선 임박'에 사라져
이재명 상임고문은 지난 대선후보 시절 자신의 SNS는 물론 유세 현장에서도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당에 드리워진 '내로남불'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다짐이었고,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노린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쇄신은 지난 9일 대선 패배로 실패했다. 0.73%포인트 뒤진 역대 최소 차 패배였지만 어찌됐든 '이재명의 민주당'은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했다.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줬다.
그런데 지난 3주 간 민주당은 여전히 '이재명의 민주당'을 위해 뛰고 있었다. 오히려 대선 때보다 더욱 조직적으로,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진정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은 6월 지방선거가 임박했다는 명분하에 모습을 감췄다.
전임 지도부였던 윤호중 전 원내대표를 공동비대위원장에 앉혔고, 신임 원내대표에 신(新)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홍근 의원을 선출했다. 서울시장 후보 역시 대선을 총지휘했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로 굳어지는 분위기고, 대선 직전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는 민주당 경기지사 유력 후보로 급부상 중이다.
"어려운 서울시장 선거, 부동산 대책으로 승부 봐야"
황진환 기자'이재명 체제'로의 당 재편이 급하게 이뤄진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대선 패배 책임이 무거운 후보가 반성과 쇄신은커녕 곧바로 지방선거에서 선수로 나선다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최종윤 의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은 백의종군하는 결기가 필요한 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국민 눈에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시급한 건 지방선거만이 아니다. (대선 패배로) 절망한 국민들께 무엇으로 어떻게 위로와 위안을 드릴 수 있는지 답을 찾고 행동을 시작해야한다"면서 "내려놓지 않는 성찰은 없고, 성찰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송 전 대표를 저격했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도 이날 국회에서 '더민초 대선 평가 경청토론회: 주권자인 국민의 소리를 경청한다'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서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계승했던 민주당만의 '가치'가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는 각계 전문가들의 강도 높은 지적이 이어졌다.
한 중진의원은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과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되는데 오히려 그런 얘기를 꺼내면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둥 역적으로 몰린다"면서 "대선 때와 달라진게 없이 지금 상태로는 오히려 지방선거도 대선처럼 패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도부 '불통', 李 '사법리스크'도 풀어야 할 숙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윤창원 기자지도부의 생각과 '다른' 의견은 묵살된다며 '불통'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난 11일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 임명에 반대한 의원이 90%가 넘었는데, 윤 위원장이 갑자기 선수(選數)별 간담회를 열면서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를 무마시켰다"며 "사실상 이재명계가 다 해먹으려는 포석이 아닌가 싶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재명 고문이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를 우려하는 지적도 나왔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고문이 구속이라도 당하면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 중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며 "이 고문의 사법 리스크 문제는 오는 8월 전당대회 전에 제대로 검증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고문이 대장동 의혹 등 사법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소하기 전까지는 재야에 머물면서 민심을 경청해야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고문은 지금 싱크탱크를 만들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민주당 취약 지역을 찾아가 몇 개월씩 거주하면서 스킨십을 늘리는 게 가장 좋은 카드"라며 "그러다가 2년 뒤 총선 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승리로 이끌고 차기 대선에 출마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