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3차 정책의원총회에서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추진을 12일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결정했다. 물론 아직 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공포 등 여러 절차가 남았지만, 여당이자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어 검찰의 수사권이 사라지는 새로운 사법 체계는 멀지 않은 시기에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다.
검수완박은 당사자인 검찰만큼이나 법조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들에게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장애인이나 서민층의 범죄 피해 구제를 주로 맡고 있는 변호사들일수록 새롭게 다가올 검수완박 체제에 대해서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높은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나타났다.
이들은 한결 같이 지난해 이뤄진 '1차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이미 사법 현장에선 사건 처리가 지체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안 없는 검수완박이 현실화될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경,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런 불행이 어딨는가"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1년 간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는 사건 처리가 안 된다는 것과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범죄 피해자들이 고소를 해도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설명이다. 그는 "고소했는데, 수사가 진행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신속한 수사와 기소, 재판은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배려"라고 강조했다.
특히 수사기관 간 사건이 오고 가는 '떠넘기기' 현상을 걱정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경찰과 검찰) 권력 간 견제를 말하지만, 현실에서 견제와 균형의 효과가 나오려면 일단 기관 간의 신뢰가 먼저"이라며 "하지만 (검경이) 책임은 서로 넘기려 할 것이고, 성과는 서로 가져오려고 다투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와 같이 검찰이 자신들의 사건으로 처리할 때는 사건 처리 실적이 자신의 성과가 되기 때문에 보완 수사도 하고, 수사 지휘도 하며 상대적으로 사건 처리가 빨리 이뤄져 왔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권이 아예 사라지게 된다면 이런 '책임감'도 같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검찰에게 기소권만 남겨 놓는다면 어떤 책임을 지겠는가? 경찰은 '우리는 수사 잘해서 넘겼는데 검찰이 공소 유지를 못했다'라고 할 것이고, 검찰은 '경찰 수사가 잘 못 됐다'라며 다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스템 붕괴 우려… 일 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어 줘야"
김예원 변호사장애인 변호에 힘 쏟는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는 사법 시스템 자체의 붕괴까지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검경이 나름 분업해서 일하던 시스템 자체가 무너졌다. 경찰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라며 "(검수완박은) 국가 공권력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경찰은 폭력·강력·사기 등 서민형 범죄에서 강점을 보여왔고, 검찰은 뇌물·금융·배임·횡령 등 복잡한 법리 싸움에 특화돼 나름대로 분업 체계를 이뤄왔는데 이런 분업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여권에서 검수완박을 주도하고 있는 황운하 의원이 검수완박이 실현되면 '국가의 수사 총량'이 줄어든다고 설명한 대목에 대해 "어떻게 수사 총량을 줄이자는 말을 할 수가 있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안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입법을 진행하면 뒷감당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 범죄자들만 살 판 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강해질 경찰 수사권에 대한 견제에도 회의적이었다. 김 변호사는 "적법하게 하고 있는지, 수사를 잘하고 있는지도 체크해야 하고, 수사가 지연되지 않고 있는지, 증거를 적시에 잘 수집하고 있는지, 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통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것을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전문인력 확충해야… 피고인도 피해 볼 수 있어"
당장 모든 사건 수사를 맡게 된 경찰과 신설 조직이 얼마나 법률적 안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형사사건 소추 과정에서 법률적 전문성이 떨어질 경우 그 피해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고인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도맡았던 신철규 변호사는 "아무래도 검찰은 법률 전문가여서 증거 등이 완벽하지 않거나, 미비하면 검찰 차원에서 걸러지는 단계가 있었다"며 "이제는 (경찰 수사에 따라) 피고인은 바로 이런 부분을 법원에서 다퉈야 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어도 검찰이 증거를 살펴 거르는 역할을 했기에 문제가 적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경찰도 최근 법조인 출신을 많이 뽑고 있지만, 모든 사건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에서 전문 인력을 확충하지 않은 상황에선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가 서울고법의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비대한 검찰 조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장애인 노동 착취 사건 등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최정규 변호사는 "수사 기간이 지연되는 현상은 과도기여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라며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이 누렸던 특권이 워낙 컸고, 사실 그것에 대한 저항으로 (검수완박 논의도) 시작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검찰의 힘 빼기는 분명 필요한 부분이다. 너무 과도하게 힘이 집중돼 있다"라며 "검사들이 어제 릴레이 회의하는 것을 보니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민변도 일제히 민주당의 '검수완박' 비판
연합뉴스변호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검수완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변협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 국민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왔는지 의문일 뿐"이라며 "오히려 범죄 수사를 받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도, 범죄로 피해를 받은 국민들의 권리 구제에도 더 악화된 환경만 조성한 것이라는 증거가 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시민단체들도 비판에 동참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경찰의 수사 능력과 통제 장치는 충분한지, 사건 관계인들의 불만과 불평은 없는지 확인하고 보완해야 한다"라며 반대했다. 참여연대 역시 "검경 간 협조 체계 부재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난 지금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안착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수사권 조정 등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검경의 민주적 통제와 인권 보호 및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자고 했지만 (민주당의 결정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