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의 모습. 이한형 기자29일로 24회를 맞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공판. 시간이 갈수록 재판부가 당황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의 항의가 거칠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시간을 지나서까지 공판을 진행하는 바람에 컵라면도 눈치 보며 먹어야 한다는 하소연은 부드러운 편입니다. 이번주에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공판 참석 여부를 놓고 한 차례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대장동 업자들에게 편의를 봐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같은 재판부 법정에 선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고성까지 지르며 증인을 윽박질렀습니다.
'유동규 소동'에 결국 정영학 녹취록 재생 한차례 연기
지난 22일 대장동 공판은 평소와 달리 오후 2시반에 마무리됐습니다. 유 전 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뒤 법정에 처음 등장한 날로, '스모킹건으로 불리는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었습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경기도 제공그런데
유 전 본부장 측의 변호인은 공판이 시작하자마자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고인이) 바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돌아가야한다고요?"라며 반문하더니 "돌아가는 것까지는 제가 허가는 안 하고, 바깥에서 잠깐 쉬는 것으로 (하면 어떠냐)"고 했지만, 변호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수면제 이후 식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후유증이 있어서요, (법정에) 그대로 앉아있을 수 없다"고 재판부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10여분간 짧은 휴정 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의 퇴정 요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한 변호인의 항의가 시작됐습니다.
2022. 04. 25 서울중앙지법 23차 공판 |
변호인: (유동규씨 수면제 복용 후) 다음날까지도 구치소 쪽에서는 먹은 사실을 몰랐고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서 남겼는데도 못봤다고 하고… (생략) 당일 접견이라도 하려고 하니까 불가한다고 하고, 오늘 여기 와서 (유씨를) 처음 봅니다. (생략) 물론 잡아두면 좋겠죠. 편하게 재판하셔야 하니까,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으니까. 하지만 구속사안이 되는 걸 하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재판부: 변호인 말씀하신 것은 객관적 자료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변호인: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피고인에게 하루종일 (재판 때문에) 나와 있으라고 하면 제가 오히려 변호인으로서 못할 짓인 것 같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변호인은 저 말을 끝으로 법정을 나갔습니다. 지난 3월에 이어 벌써 두번째 무단 퇴정입니다.
변호인측은 재판부의 판단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검찰이 증거인멸 혐의로 다시 영장을 청구한 것은 편법으로 구속기한을 늘리려 한 꼼수인데 이를 걸러내야할 재판부가 오히려 검찰의 편법적인 영장청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불만이 깔려있습니다. 영장 재청구로 충격을 받은 유 전 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재소자 관리 소흘로 징계를 두려워한 구치소측이 이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까지 풍겼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50알의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기도했다고 하고 유서까지 남겼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교도소측은 이를 다 부인하고 있습니다. 일단 구치소 내에서 치명적일 수 있는 다량의 수면제를 구한 방법 등은 아직까지 사실 여부가 확실히 가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통상 검찰측과 피고인 모두 재판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관례에 비춰보면 이레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변호인측이 정말로 억울해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분통 터뜨린 유동규, 진실공방 현장된 법정
유 전 본부장 측은 자신이 쓰던 휴대전화를 사실상 배우자인 박모씨에게 맡긴 뒤 검찰 압수수색 직전 망가뜨려 쓰레기봉투에 버리도록 한 혐의(증거인멸교사)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혐의는 영장 재발부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 측은 단순히 사실혼 관계인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또 ①휴대전화 저장장치에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고 ②검찰이 이미 유 전 본부장의 다른 휴대전화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을 마쳤고 ③사실혼 관계인 박씨는 이 사건 휴대전화에 무슨 정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배임 등 주요 혐의보다 증명하기 훨씬 간단한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해 구속기간을 연장하려는 것은 꼼수라고 주장합니다. 악의적인 추가 기소라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변호인이 퇴정한 뒤 유 전 본부장과 검찰이 서로 말을 끊기도 하면서 날이 설대로 선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2022. 04. 25 서울중앙지법 23차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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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피고인 건강 관련 문제라 검찰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한데, 그럼에도 재판 관련 문제고 제가 볼때는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피고인과 변호인의 방식은 우려스럽습니다. 20일에 피고인이 구치소에 비스듬히 앉아서 (교도관이)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서 의무실로 옮겼는데 검사에서 정상이었습니다. 만일 몰라서 인근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장치)와 혈액검사 등을 실시했는데 정상이었고 당일 복귀했습니다. (중략) 구치소가 조사 중에 있고 정확 사실관계 추후 알려질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 보면 건강 상태에 크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내부 CCTV를 확인해봐도…
유동규: 제가 말씀 좀 드리고 싶습니다.
검: 말씀 드리고 나서…
유동규: 제가 말씀을…
재판부: 검찰 말씀 끝나면 (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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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유 전 본부장의 자살 시도 자체에 의문을 표시하자 유 전 본부장의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분에 차 떨리는 목소리로 "죽는 게 자랑이냐, 모멸감을 느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의 호소에 재판부는 검찰·다른 피고인측 변호인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재판부와 변호인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유 전 본부장은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습니다.
2022. 04. 25 서울중앙지법 23차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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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규: 경험하지 않은 것을 남이 얘기하는 것은 쉽습니다. 단 1초도 숨을 쉬고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면제) 50알 먹은 것 맞고요. CCTV가 있어서 뒤돌아서 (보이지 않게) 약을 털어 넣었어.
재판부: (향후 공판 일정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검찰 측은?
검찰: 일단 오전 기일은 지금 상황에서 진행이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요. 공판을 강행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피고인의 건강 상태를 좀더 체크한 다음에 의견을 드리고 싶다는 게 검찰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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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회의원도 소란…참다 못한 재판부 '엄중 경고'
법정에서 실랑이를 연출한 건 유 전 본부장뿐만이 아닙니다.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화천대유로부터 50억원을 맏아 뇌물수수 혐의로 법정에 선 곽상도 전 의원은 정영학 회계사의 증언이 이어지자 "정영학, 정영학!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해"라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정영학 회계사. 연합뉴스정 회계사는 지난 27일 곽 전 의원에게 불리한 증언을 진술했습니다. 정 회계사는 "하나은행의 컨소시엄 (참여) 자체가 무산되는 것을 막아줬기 때문에 곽 전 의원 아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았다"며 "50억원을 지급한 것은 하나은행의 컨소시엄 참여 무산을 막아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정타라면 결정타가 될 수 있는 증언입니다. 곽 전 의원이 오전 재판이 끝나고 재판부가 퇴정한 뒤 정 회계사에게 "거짓말"이라고 소리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후 공판에서 이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재판부는 곽 전 의원에게 "공판 외에 그런 일은 있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피고인들의 잇딴 소란에 재판부 역시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되고 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사흘 간 시간을 갖고 다시 열린 29일 공판. 재판장을 맡고 있는 이준철 부장판사는 출석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유 전 본부장의 변호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2. 04. 29 서울중앙지법 23차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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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피고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주장을 하고 변론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내지는 변호권 행사로서 절차 내에서 적법하게 하게 돼 있고, 그에 대해 제한을 가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주장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재판장의 허가 없이 무단, 임의로 퇴정하는 행동과 행위는 경우에 따라선 방어권 남용으로 보이는 점이 있습니다. 향후 그런 행동을 주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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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피고인들 가운데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피고인 입장은 대체로 절박합니다. 검찰에 혐의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해 수세적인 입장보다 공세적으로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피고인 입장에서 유무죄의 향방을 전적으로 결정할 재판부를 압박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일 수 있습니다. 대장동 사업이 수천억대의 이권이 걸려있고 여권의 대선후보까지 연결된 만큼 이런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피고인들의 처지가 절박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들의 절박함이 과연 득일지 실일지는 재판의 마지막 날에서야 비로소 판가름날 전망입니다.